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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내 얘기 좀 들어봐요.” 못다 전한 수해 현장 - 사회부 송재인 기자
2022-09-08

■ YTN 보도국 사회부 송재인 기자


[취재후기]

“기자님, 내 얘기 좀 들어봐요.” 못다 전한 수해 현장


화면으로 먼저 전한 ‘물 폭탄’


곧장 현장으로 가진 못했습니다. 하늘이 뚫린 듯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던 시기, 저는 출입처에서 쏟아지던 수사 속보를 막고 있었습니다. 115년 만에 내린 ‘역대급’ 폭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퇴근길, 또 다음 날 출근길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본 건 폭우가 휩쓸고 간 흔적의 아주 일부였습니다.


수마가 지나간 상처를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이틀 뒤였습니다. 이틀에 걸쳐 수도권에 ‘물 폭탄’이 쏟아진 다음 날입니다. 이때도 현장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24시간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뉴스를 전하는 YTN은 유사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취재기자가 직접 시간대마다 스튜디오에 올라가곤 합니다. 실시간 확인이 어려울 정도로 쇄도하는 시청자 제보 영상을 한데 모아 전국 곳곳의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가장 빨리 전해 추가 피해를 막는 역할입니다.


시간대마다 다른 원고를 준비하며 수많은 제보자와 통화했습니다. 피해 현장의 위치는 어디인지, 촬영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다치진 않았는지, 그렇지는 않더라도 걱정이 여전한 상황은 아닌지. 쏟아내는 제 질문에 답하는 제보자들의 목소리는 대체로 불안하거나, 흥분돼 있습니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 목소리들이, 저의 ‘멘트’ 대신 그대로 방송돼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충분히 완성된 뉴스일 것 같았습니다. 스튜디오에 차분하게 울리는 제 목소리를 들으며 또 한 번 생각했습니다.



“기자님 얘기 좀 들어보세요”


며칠 뒤 마침내 현장에 갔습니다. 동료 기자들에 비해 너무 늦게 가는 게 아닌가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수해 피해 상황은 여전히 그 자리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이틀 동안 집중적으로 폭우가 내린 경기 남부, 광주의 한 마을은 차량 진입조차 어려웠습니다. 뒷산에서 토사와 나무가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려오며 윗마을로 올라가는 유일한 차로는 흔적 없이 부서져 있었습니다. YTN 차량은 임시로 흙을 다져 만든 비포장도로에 겨우 올랐습니다.


마을 입구엔 마치 벌목을 마친 듯 커다란 나무들이 맥없이 쌓여있었습니다. 사이사이 부서진 도로 조각이 나뒹굴었고, 범람했던 천을 따라 올라가는 길엔 마당이 온통 흙투성이로 엉망인 집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길에서 마주친 승용차는 마치 커다란 음료 캔처럼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고, 산에는 초록 하나 없이 토사가 쏟아져 내려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본 심각한 현장 ‘화면’입니다.



생각보다 더 참혹한 수준이라고 비로소 깨닫게 된 건 화면이 아닌 주민들의 ‘목소리’를 통해서였습니다. 마주치는 주민마다 “기자님, 얘기 좀 들어보라….”며 다가와 피해를 전했습니다. 그날은 주민들이 닷새째 수도에서 물을 구경하지 못한 날이었습니다. 찜질방을 오가며 겨우 몇 번 씻었다고 전하던 주민들 표정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건물 2층 단칸방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간 나무도 주민의 말을 듣고 나니 그저 ‘화면’이라 여길 수만은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몸이 안 좋아. 새벽에 누워 자고 있어서 천만다행이지, 혹시나 일어서 있었으면 정말….” 꼭 들어야 할 게 있다며 실시간 중계 방송을 준비하던 제게 다급하게 달려온 건물 주민이, 가전제품과 이불, 나무와 토사가 한데 뒹구는 할머니 방을 보여주며 설명을 쏟아냈습니다. 설명을 듣고 내려오던 길, 다른 주민은 갑작스럽게 추진된 일대 개발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며, 예견됐던 인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다시 찾는 수해 현장


하지만 그 모든 현장의 목소리를 다 보도로 전하진 못했습니다. 간접적으로나마 화면으로, 10초 남짓의 인터뷰로 전했지만 충분하다고 말할 순 없겠지요. 가끔 피해 현장의 중심에, 또 현장을 담은 기사의 중심에 주민들이 있던 건지, 기자가 있던 건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화면 스케치로 취재를 마무리한 건 아닌지 찜찜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저만의 고민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YTN 사건팀 기자들은 다녀갔던 현장을 또다시 찾고 있습니다. 충분히 담지는 못했던 목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혹은 또 예고된 비 소식에,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복구에, 추석 명절을 앞두고, 또 다른 목소리가 ‘기자님’을 찾고 있진 않을까 생각하면서요. 조속한 복구와 피해 지원으로 이 목소리가 현장에서 잦아드는 날이 앞당겨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