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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토리] 죽음의 공간으로 바뀐 '학교 급식실'
2022-02-09

■ YTN 보도국 사회부 김대겸 기자


2021 한국방송기자대상 기획보도 부문 수상 - 사회부 김대겸 기자, 영상취재부 이규 기자

- 2021 방송기자대상 수상한 사회부 김대겸 기자(좌), 영상취재부 이규 기자(우) -


[취재후기] 죽음의 공간으로 바뀐 ‘학교 급식실’…익숙함에 짓밟힌 인권 문제


급식실 노동자들의 잇따른 폐암…고통을 마주하다


“30kg 무게를 내 몸에 달고 다니는 느낌”, “앞뒤로 누르고 송곳으로 찌르는 느낌”. 취재를 위해 만난 급식실 노동자는 너무나 덤덤한 투로 폐암의 고통을 묘사했습니다. 3년이란 긴 투병 시간은 그녀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무기력함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학교 급식실은 아이들의 밥상을 책임지는, 그렇기에 가장 건강해야 할 공간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이들의 건강한 밥상을, 밝은 미래를 책임져온 노동자들은 일의 대가로 자신의 건강을 내놓고 있었습니다.


급식실 노동자들의 폐암 발병 문제는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소문으로 떠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폐암의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다 보니, 투병의 고통은 오롯이 노동자들의 몫으로 떠넘겨졌습니다. 교육부는 이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해왔습니다. 제가 마주했던 폐암 투병 노동자의 무기력함. 어쩌면 교육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가 이들을 더 궁지로 몰고 갔을지 모릅니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폐암 발병과 죽음, 그리고 이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교육 당국. 이 잘못된 공식을 다시 제대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취재를 결심한 이유입니다.


“죽음을 멈춰주세요” 외침 외면해 온 정부…이제는 책임 다 하기를


지난해 2월, 근로복지공단이 폐암에 걸려 숨진 50대 노동자에 대해 처음으로 산업재해를 인정했습니다. 폐암 발병 원인으로 열악한 급식실 환경과 ‘조리흄’이란 발암 물질이 지목됐습니다. ‘조리흄’은 기름을 이용한 고온의 조리 과정에서 나오는 나노 미터 크기를 지닌 미세한 입자의 발암 물질을 말합니다. 입자 크기만으로도 1급 발암 물질인 미세먼지보다 유해하고, 장기간 노출 시에는 그 위험성이 배가됩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조리흄’에 대한 국내 연구가 거의 없고, 측정 방법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또다시 손을 놓았습니다.


급식실 조리 과정에서 ‘조리흄’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전문 업체를 섭외해 정밀 측정을 진행했습니다. 실험 결과 초미세 입자 크기의 기름 분진이 기준치보다 18배 이상 높게 나왔습니다. ‘조리흄’의 핵심 구성 물질인 ‘oil fume’, 즉 초미세 기름 분진을 측정해냄으로써 ‘조리흄’의 발생 사실을 간접적으로 입증해낼 수 있었습니다. 여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조리흄’의 유해성과 잘 알려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깊이 설명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여러 해외 논문들을 찾아 보충했습니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절대 공개하지 않던 급식실 내부 환경. 노동자들로부터 영상 제보를 받아 열악한 급식 환경도 낱낱이 보도할 수 있었습니다.


연속 보도 이후 교육부는 실태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국회도 대안 마련을 위해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변화가 이어졌습니다. 의미 있는 움직임입니다. 다만 이렇게 쉽게 변화가 생길 수 있는 문제가 몇 년 동안 방치된 상태로 있었다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늦게라도 변화를 위한 첫발을 내딛은 만큼, 정부 당국도 이제는 책임 있는 자세로 문제 해결의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수상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가려진 주연들’


“이게 그렇게 큰 문제야? 지금까지 별문제 없었는데 그럼 다른 곳들은?” 보도가 나가고 많은 이들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익숙함의 관성에 기댄 질문은 여전히 많은 영역에서의 문제 제기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다른 언론사들이 이 문제를 가볍게 다루고 지나쳤던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사각지대에 가려진 문제점을 잘 짚을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쏟아준 이종구 부장과 안윤학 캡. 날카로운 질문과 예리한 지적으로 기사를 다듬어주신 박소정 데스크. 실험 설계부터 각종 논문과 자료 검토에 힘을 실어주신 임성호 바이스. 화면 구성에 생생함을 불어 넣어준 김유정 그래픽 디자이너. 그리고 긴 제작 기간 빈자리를 채워준 사건팀 팀원들까지. 비록 저와 영상취재부 이규 기자가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상을 받아야 할 ‘찐’ 주연들은 따로 있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