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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토리] 바뀔 때까지 3D프린터 보도는 계속됩니다
2022-02-28

■ YTN 보도국 기획탐사팀 김지환 기자


2021년 한국기자상 기획보도 부문 수상 - 탐사보고서 '기록' <3D프린터와 암>

- 2021년도 한국기자상 기획보도 부문 수상한 YTN 기획탐사팀 -


[취재후기] 바뀔 때까지 3D프린터 보도는 계속됩니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3D프린터 업무를 한 선생님 두 분이 같은 희귀암에 걸렸다’ 처음 취재에 나서게 된 제보였습니다.


3D프린터를 쓰고 육종암에 걸렸다는 교사가 3명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가습기살균제, 삼성 백혈병 사태 등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갈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초 취재 목표는 ‘3D프린터와 육종암의 연관성을 밝히겠다!’ 였습니다. 하지만 패기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육종암 자체가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희귀암이기 때문입니다. 원인이 알려진 질병, 암이라고 해도 과학적 증거, 또 그렇게 볼만한 충분한 증례수가 없는 한 인과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전문의, 기관의 자문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과학적 증거를 많이 모으고, 또 3D프린터로 고통받는 다른 선생님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전국을 수소문한 끝에 3D프린터로 수업한 뒤 각종 질병에 걸린 선생님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성 교사는 3D프린터를 다룬 뒤 급성 유방암과 급성 자궁경부암을 동시에 얻었습니다. 남성 교사는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어느 날 갑자기 대소변을 가릴 수 없는 지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가족력도 없었고, 보험비를 아까워할 정도로 병원 한번 제대로 가본 적 없는 분들이셨습니다. 다른 두 분은 육종암에 걸린 교사들의 초기 증상처럼 갑자기 꼬리뼈 통증과 어지럼증 등을 앓고 계셨습니다. 3D프린팅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고3 학생은 급성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 YTN 뉴스 화면 캡쳐 -


분명 연관성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실험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실험 대상은 선생님들이 실제로 쓴 3D프린터와 필라멘트(플라스틱 프링팅 소재)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오래 지나 단종되거나 국내에서 철수한 총판도 있었습니다. 제품 자체를 구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습니다. 전문가들은 필라멘트 소재가 녹을 때 나오는 2차, 3차 물질이 핵심이니 꼭 똑같은 프린터, 필라멘트가 아니어도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꼭 똑같은 제품으로 실험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선생님 한 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 정부와 관계기관, 기업 등은 곧장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당시 문제점 등이 얼추 진단됐지만, 딱 한 가지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고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이 무슨 프린터와 필라멘트를 썼느냐’였습니다. 일반 제품들로 일반적으로 나오는 유해물질, 발암물질 등은 국내 연구원 한 곳이 발표도 했던 만큼, YTN 기획탐사팀은 실제로 선생님들이 쓴 제품에서 어떤 물질이 나오는지 밝혀내고 싶었습니다.


- 3D프린터 유해물질 확인 실험 현장 -


수소문한 끝에 한 달여 만에 제품들을 다 구했습니다. 선생님들이 근무했던 환경과 똑같이 실험실도 꾸몄습니다. 밤을 새고 감시카메라까지 동원하며 13번 실패한 끝에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1군 발암물질들이 나왔고, 산업단지나 쓰레기소각장에서나 볼 수 있는 자일렌이라는 물질이 나왔습니다. 실험내용을 바탕으로 해외 전문가들을 인터뷰했습니다. 3D프린터가 교육현장에 보급된 과정, 거기서 문제는 없었는지 살폈습니다. 교육현장 매뉴얼 초안과 보급된 버전을 비교하고, 법은 어떤지, 내년 예산은 어떻게 됐는지도 두루 확인했습니다.


추가 피해 선생님들을 찾고, 전문가 인터뷰를 포함한 과학적 증거와 우리 정부의 문제점까지 살핀 덕에 취재 파장은 컸습니다. 5개 부처는 곧장 대책안을 내놨고, 전국 초중고 교사 5천 2백여 명은 육종암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라는 탄원서까지 냈습니다. 정부와 시민단체, 유족이 모인 토론회가 처음 열리기도 했습니다.


- YTN 보도 이후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 -


사실 한국기자상 수상 소식을 듣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돌아가신 고 서울 선생님의 아버지께서 그날 대통령에게 아들이 죽은 원인을 밝혀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보도가 나가고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선생님들과 유족에겐 달라진 게 없습니다. 오히려 보도에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대통령에게까지 읍소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현장과 법도 바뀌지 않았고, 올해 초에 나온다던 선생님들의 공무상 재해 신청 결과는 다시 연말로 미뤄졌습니다. 임시방편이나 공염불이 아닌 실질적인 대책과 법 개정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또, 과기부 계획대로 필라멘트 전수 조사를 통해 안전기준이 마련되고, 국내 3D프린팅 산업도 더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YTN 기획탐사팀도 프로그램 제목 그대로 ‘기록’하며 지켜보겠습니다.


- 故 서울 교사 아버지의 청와대 앞 1인 시위 모습(좌)과 탄원서 일부(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