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Y스토리] 응모한 적도 없는데 '기자상'이…"많이 놀라셨죠?" - 부산취재본부 김종호
2023-12-20

YTN 보도국 부산취재본부 김종호

운 우리말 기자상 방송분야 1등 가온상 [수상기]


▲ <쉬운 우리말 기자상 - 가온상> 수상한 김종호 기자


"김종호 기자님은 제1회 <쉬운 우리말 기자상> 보람상에 선정됐습니다."

11월 어느 날 전자우편을 확인하다가 제목 하나를 보고 쌔~~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최근 몇 년 사이 어떤 기자상에도 응모한 적이 없었고 "제1회"라고는 하지만

기자상 이름도 생소해서입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 일단 제목을 눌렀습니다.


"한글문화연대와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가 공동 주최하는…"

어떤 식으로 수상자를 선정했는지 자세한 설명을 읽고 나니 그제야 의심이 좀 풀렸습니다.

그런데…

"시상식 안내를 위해 답장으로 손전화 번호를 알려 주시면 곧 전화 드리겠습니다."

이 한 문장에 다시 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겁먹지 않은 척 답장을 보내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제가 수상자라니! 방송 기자들 한글 사랑이 많이 부족했나 봅니다."


▲ 방송분야 1등 <가온상>


전자우편이 한 번 더 왔습니다.

"[수상자 정정 안내]"

허허! 결국, 그런 것이었나? 내가 별로 한 게 없는데 무슨 상?

그런데 제가 받을 상이 '보람상'이 아니라 '가온상'인데 잘못 통보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 다시 의구심과 살짝 설렘이 교차하던 찰나, 모르는 번호가 손전화에 뜹니다.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 유행어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습니다.

"많이 놀라셨죠?"


우여곡절(?) 끝에 저는 2023년 12월 5일 프레스센터에서 제1회 <쉬운 우리말 기자상>을 손에 들었습니다. 기자상 한 번 받으려면 사내 수상이라도 온갖 서류를 다 준비해야 하고 쟁쟁한 출품작과 경쟁도 해야 하는데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이 방송 부문 1등 상 수상자가 됐고 덤으로 제1회 수상자란 명예도 얻었습니다. 거기에 제가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회사 동료가 쓴 기사에 제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방송까지 타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같이 영광을 누린(?) '북돋움상' 수상자 홍민기 후배, 축하합니다.


▲ '보이스피싱'을 우리말 대체어 '전화금융사기'로 표현한 김종호 기자 (YTN 뉴스화면 캡처)


대한민국 기자들이 자주 쓰는 '보이스피싱', '빅 스텝', 스쿨 존' 같은 외국어 용어에는 '전화금융사기', '대폭 조정', '어린이보호구역' 같은 우리말 대체어가 있습니다.

한글문화연대 분들이 방대한 기사를 검색해 어느 기자가 우리말 대체어 위주로 기사를 썼는지 분석하셨다고 합니다. 자랑 같지만 저는 평소 기사를 쓸 때 외래어와 어려운 한자 표현, 일본어 잔재와 영어 번역 투 등을 의식적으로 안 쓰려는 노력을 제법 오랫동안 남몰래(?) 해왔습니다. 물론 바쁘게 기사를 쓰고 제작하는 과정에 저도 모르게, 혹은 순간의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그런 표현을 덜컥 쓰기도 했음은 고백하지 않아도 다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제 숨은 노력을 알아봐 주신 데 대해 참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이 큽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기사를 쓰다가 수상 이후에는 기사 쓰는 게 더욱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누구도 제 앞에서는 내뱉지 않았지만, 유령처럼 어른거리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 기자상 받았다더니 기사가 왜 이래?"


대한민국에서 쏟아지는 기사에서 우리말은 계속 병들어갑니다.

여전히 기자들이 "피해를 입고, 사고를 당한다"고 말하는 데도 버젓이 주요 기사와 뉴스로 독자와 시청자를 만납니다. 제가 1회 수상자라는 자부심에 들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쉬운 우리말 기자상>은 외국어 용어뿐만 아니라 더 넓은 분야에서 우리가 쏟아내는 기사를 분석해 기자들에게 당근과 채찍이 됐으면 합니다.


▲ '스쿨존'을 우리말 '어린이보호구역'으로 표현한 리포트 (YTN 뉴스화면 캡처)


평소 의식적인 노력이 있다고 자평하긴 했지만, 주변 도움도 컸습니다. 시상식 자리에서 소감을 전할 기회를 주시지 않아 마음에 담기만 했던 말을 기회 주신 여기에서 풀어 놓습니다.


언제나 제 기사 살뜰히 살펴주신 전국부 황보선 부장과 송태엽 선배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눈으로는 제 기사 난도질하셨지만, 승인 단추 누르시기 전에 점 하나 찍는 거로 참아주신 용단 잘 알고 있습니다. 수상에 큰 힘이 됐습니다.^^


'영어 쓰기 편한 도시'를 만든다며 각종 사업 용어와 보도자료에 영어를 넉넉하게 사용해 주신 부산시에도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수많은 영어 단어가 그 속에 있었기에 제가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는 실적도 차고 넘쳐 경쟁자를 제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방송 부문 3등 상 수상자인 KBS 기자도 저와 함께 부산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시상식 당일 제법 긴 촬영 일정에 고생한 왕시온 후배와 관 뚜껑 덮은 '부산지국'을 다시 살려내는 신공을 발휘하면서 어려운 기사를 정리해준 권민석 후배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한글문화연대 활동에 앞장서시면서 시상식에서 사진도 찍어주시고 격려도 해주신 YTN 대표 앵커 이광연 선배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맺으면서 YTN 식구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