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M스토리] 국가기밀 보도의 원칙은 무엇인가? - 영화 ‘오피셜 시크릿’ 리뷰 (※스포일러 주의)
2023-12-05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국가기밀 보도의 원칙은 무엇인가?


영화 오피셜 시크릿 (Official Secrets) │2019

감독: 개빈 후드/ 주연: 키이라 나이틀리, 랄프 파인즈, 맷 스미스


▲ 영화 '오피셜 시크릿' 포스터


언론사나 기자가 국가 안보에 관한 진실을 보도할 때, 국가는 기밀누설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밀은 대개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때문에 이 보도 결정을 두고 각 저널리스트는 물론 언론매체도 고민할 수 있다. 더구나 정부가 국가 안보는 물론이고 세계 평화를 위해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하는데 이에 반하는 기밀을 보도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사례가 민주주의 나라 영국에 실제 있었다.


영화 ‘오피셜 시크릿(Official Secrets, 2019)’은 1급 기밀을 유출한 영국 정보부 요원 ‘캐서린 건’의 실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언론매체의 보도가 역시 그 트리거 역할을 했다. 여기에서 1급 기밀은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의 근거로 UN 만장일치 결의를 조작으로 끌어내려는 음모였다. 분명 이것은 잘못된 행태지만, 이를 보도했을 때, 기밀누설죄로 처벌을 받는다면, 과연 저널리스트는 어떤 선택을 할지 영화는 묻는다.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잘못된 미국의 전쟁 계획을 알게 된 주인공 캐서린 건(키이라 나이틀리 役)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언론에 제보한다. 두 번째는 가까스로 실제 언론 보도가 이뤄지는 치열한 과정이 있고 그로 인해 세상이 발칵 뒤집히며 캐서린이 검찰에 기소가 된다. 세 번째는 국선변호인을 지나 전문 인권 변호사가 나서며 무죄 판정을 받게 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여기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대목은 바로 언론 보도 과정이다.

▲ 영화 '오피셜 시크릿' 스틸컷


이 영화에서는 국가 기밀누설죄에 이어 또 하나의 법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공무상 기밀 유지법이다. 이는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가 개정한 ‘공무상 비밀 엄수법(Official Secrets Act, 1989)’에서 비롯했다. 이 법 때문에 당연한 진실의 언론 보도조차 매우 어렵게 했다. 국가 안보를 위한다는 명분과 달리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악용돼 버렸기 때문이다. 반역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인데 용기를 낸 캐서린 건이 대단하지만, 정부를 지지하는 신문사 『옵서버』의 마틴 브라이트 기자가 보도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캐서린은 영국의 정보통신본부(GCHQ)에서 일하는 국가 정보부 요원이다. 주로 도청을 통해 다른 나라들의 정보를 수집하여 보고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평소처럼 출근하여 평범한 하루를 시작하려는데 믿을 수 없는 내용이 담긴 메일을 받는다. 캐서린은 이것이 누구나 경악할 만한 내용이라고 판단한다. 그것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에서 온 1급 기밀 내용으로 영국 정보부가 UN 안보리(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 가운데 앙골라, 불가리아, 카메룬, 칠레, 파키스탄, 칠레 등 6개국을 불법 도청 등 뒷조사를 해서 미국에 그들 나라의 약점을 제공하라는 요청이었다. 즉, 캐서린은 유엔의 이라크전 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UN 안보리 이사국들의 약점으로 협박해 이라크 전쟁 '찬성'을 끌어내려는 더러운 술책이라고 생각했다.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도 대지 못하면서, 미국이 이라크와 합법적으로 전쟁할 수 있도록 UN의 찬성표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미국의 석유 기업 이익을 위해 기어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려 한 부시 대통령 일파의 계략이라고 봤다.


▲ 영화 '오피셜 시크릿' 스틸컷


캐서린은 전직 직장 동료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상의하는 등 오랜 고민을 한다. 마침내 캐서린은 언론에 이런 기밀을 몰래 알리고 이를 공론화해서 전쟁을 막기로 마음먹는다. 뻔히 일어날 불법 전쟁으로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는 걸 막으려는 것이었다. 해당 내용을 기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편지였다. 일단 사무실에서 메일 내용을 프린트하는데 이조차 쉬운 과정은 아니라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캐서린은 프린트한 종이에 담당자가 적혀있는 부분은 떼어내 자신을 노출하지 않는다. 대신 뒤에 손글씨로 적는다. 미국안보국(NSA) 지역 담당관 ‘프랭크 코자’에게 연락하라는 것. 발신인 프랭크 코자가 실제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하라는 뜻이다. 우체통에 넣는 캐서린의 손은 떨리기만 한다. 이 편지는 일단 전직 직원이자 반전 운동가에게 전해지고 반전 운동을 하는 기자에게 다시 전해진다. 아랍 이슬람계 독립 언론인이자 반전주의자인 이본느는 언론사 기자들과 접촉하지만 3주가 지나도 보도가 나오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초조해진 캐서린은 다시 처음에 발송한 편지를 받은 전직 동료를 찾아가지만 전직 동료는 우리가 만나면, 위험하고 우리 손을 떠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보도가 더뎌진 것일까? 이런 과정은 1급 기밀을 대하는 언론사의 태도를 볼 수 있게 한다. 아랍 이슬람계 독립 언론인 이본느는 단독으로 보도할 수 없었다. 아랍 이슬람계 독립 언론인이 보도해봤자, 이라크 침공을 막으려는 조작된 가짜 뉴스라고 세상이 여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서 급진 매체인 ‘데일리 미러(Daily Mirror)’지에 보냈지만, 응답이 없었기에 이제 이본느 기자는 영국 주간지 『옵서버』의 기자 마틴 브라이트(맷 스미스 役)을 접촉한다. 그것도 도청이 되지 않을 지하 주차장에서 접촉하고 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내용을 전해 받은 『옵서버』에서 조차 처음에는 믿지 않는다. 일단 아랍 이슬람계 독립 언론인이 편지를 전해주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더구나 『옵서버』는 이미 이라크 후세인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를 잔뜩 준비하고, 영국 총리 블레어의 편을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영화 '오피셜 시크릿' 스틸컷


과연, 『옵서버』 지는 보도하게 되는 것일까? 여기에서 국가기밀을 보도할 때 원칙을 생각하는 장면들이 연이어 이어진다. 우선 중요한 것은 담당자 프랭크 코자의 실존 여부였다. 브라이트 기자가 NSA 공보실에 전화를 걸어 프랭크 코자의 실존 여부를 물어야 한다. 브라이트 기자는 공보실에 프랭크 코자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통화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부당한다. 정보 안보 기관이니 당연한 노릇이다. 이 같은 사실을 동료 기자 피터에게 알리자 피터는 자칫 신문사가 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브라이트는 이 보도를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그는 다음 단계로 전문가를 통해 이 메일의 진위를 체크한다. 폴 비버 국제 안보 자문위원은 관심 대상이라는 뜻의 단어 ‘토피’를 정보기관에서 쓰는 전문 용어라고 확인해준다. ‘QRC 급증 노력’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로 ‘관심 대상을 도청하라’라는 NSA 암호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생산 라인을 통해 얻은 정보’라는 표현도 정보원을 통해 얻은 첩보를 말한다. 하지만 이 전문가도 프랭크 코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정보원과 신뢰성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물러선다. 다들 국가기밀이라는 점 등에 소극적이긴 마찬가지다. 또 다른 기자를 통해 다시 공보실에 연락하지만 내선 번호를 알면 연결하겠다는 말만 한다.


한편 브라이트 기자는 평소에 M16 직원과 테니스를 치고 있던 동료 기자 피터를 통해서 제보 내용의 신뢰성을 확보하려 한다. 그를 통해 영국 정보국에서도 우려가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요원이 미국의 음모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아서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된다. 한편, 미국에 파견된 또 다른 『옵서버』 기자 애드 벌리아미는 대량 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NSA 공보실에 프랭크 코자의 존재를 묻는다. 역시 NSA 공보실에 프랭크 코자에 대한 정보는 줄 수 없다고 한다.


▲ 영화 '오피셜 시크릿' 스틸컷


그런데 기자들이 여러 정보원을 취재하고 정보 소스를 얻으려는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드디어 다른 채널을 통해서 내선 번호를 알아내고 NSA 공보실에 내선 번호를 말하자 바로 연결해준다. 마침내 프랭크 코자와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스스로 『옵서버』의 애드 벌리아미 기자라고 하며 이라크 전쟁에 관해 미국의 계획을 물어보자 바로 끊어버리는 프랭크 코자. 이로써 대화를 더는 진척시킬 수 없었지만, 프랭크 코자가 실제 존재한다는 점을 파악하게 된다. 따라서 전달받은 그 메일의 정보 가치의 신뢰성도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옵서버』 데스크는 ‘히틀러의 일기처럼 가짜 같다, 보도하면 모두 해고될 것’이라면서 우려한다. 더구나 원본 소스를 이본느 리들리 기자에게서 받았다고 하니 다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다. 그가 아랍계 반전주의자로 무리한 취재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마틴 브라이트 기자는 보도해야 하는 이유를 요약하여 설득한다. 일단 메일을 발송한 프랭크 코자는 실존 인물이며, 전문 용어가 안보 기관에서 사용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이 보도가 나갈 때 미국과 영국 정부는 체면을 구기지만, 영국과 영국 국민에게는 해가 없다는 해군 제독의 의견을 덧붙이는 것은 물론 나아가 전쟁을 막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 영화 '오피셜 시크릿' 스틸컷


이에 대해 반박도 있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고 영국 첩보 기관이 보도 이후 신문사를 감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와 유지하는 관계의 문제도 있었다. 총리실에서 정보를 항상 받기에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번 보도로 이것을 모두 뒤집으면 앞으로 정부 취재를 어떻게 하냐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브라이트는 우리가 언제까지 취재는 안 하고 정치인 앵무새 역할만 할 거냐고 반박한다. 편집장은 이런 격렬한 찬반 논쟁 속에서 마침내 승인하는데, 그 논리가 단순하다. 좋은 기삿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역시 언론매체는 특종이 있어야 존재감을 갖는다’는 세속적인 관점도 드러낸다. 이로써 마침내 영국 주간지 『옵서버』의 기자 ‘마틴 브라이트(맷 스미스)’는 이 1급 기밀을 대서특필한다.


▲ 영화 '오피셜 시크릿' 스틸컷


이 보도의 반향은 컸지만, 이후 캐서린은 국가 기밀누설죄로 기소가 된다. 더구나 입사할 때 공무원 기밀 엄수 서약을 했기 때문에 상황은 캐서린에게 불리하다. 그런데 반전이 시작되었다. 이런 캐서린에게 천군만마가 등장한다. 바로 인권 변호단체 ‘리버티’의 벤 에머슨(랄프 파인즈 役) 변호사가 캐서린 건을 맡아서 마침내 전쟁의 부당성, 불법성을 증명하자고 말한다. 전쟁의 불법성에 대해 정부 부처 내부의 지적이 있다면 무죄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의 비판적 지적을 한 인물은 엘리자베스 윌름스허스트 외교부 법률 부고문이이었다. 그는 법무부 장관에게 이대로 전쟁을 일으킨다면 불법이라고 조언했고, 국제적으로 불법 행위로 기소될 수 있다고 했다. 벤 변호사는 그의 지적이 담긴 상세 보고서를 보고 처음에는 법무부 장관이 동의했지만, 마음이 변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미국 백악관으로 간 이후 변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변호인과 저널리스트의 공조가 이뤄진다. 벤 변호사는 미국에 간 이후 누구를 만난 것인지 알아내도록 브라이트 기자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미국 파견 기자의 취재력으로 부시, 럼스펠드, 라이스, 파웰의 변호사들을 만난 사실을 알아내게 되는데 사실상 전쟁 주동자들을 만나고 영국 법무부 장관의 태도가 변한 것을 확인하게 된다. 한편, 대량 살상무기가 이라크에서 발견되면 캐서린 건의 재판 상황이 복잡해진다며, 이라크 현지에 파견된 피터 기자를 통해 그 상황도 실시간 취재 내용을 공유토록 한다. 대량 살상무기가 발견되면 국가기밀누설죄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량 살상무기는 없다는 것을 기자들의 현지 취재를 통해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 영화 '오피셜 시크릿' 스틸컷


마지막으로 법무부 장관에게 제출된 보고서 자료 제출 요구를 하는데 고민스러운 점이 있었다. 만약 문서 요청을 하면 유죄 받을 가능성 컸다. 자료 요청을 안 하면 형량 협상을 통해 좀 더 가볍게 처벌받을 수 있었다. 캐서린은 무죄를 주장하며 협상에 응하지 않고 최종 재판정에 나선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의외의 상황이 펼쳐진다. 검찰이 문서를 공개하지 않고 기소를 중지하고 소를 취하한다. 재판장은 묻는다, 재판 포기냐고. 검찰은 이유는 밝히지 않는다. 마침내 캐서린은 무죄가 된다. 검찰은 이미 재판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내부고발자를 괴롭힌 것이다.


이 영화는 국가 안보 기밀과 관련한 제보가 언론사에 들어올 때 어떤 점을 파악하고 확인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또한, 어떤 사안일 경우 국가기밀누설죄에 해당되고 또 안 되는지도 보여준다. 아울러 국가에 대응해 내부고발자가 재판을 벌이는 경우 언론사와 변호인단의 공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생각하게 해준다. 어떤 전쟁이라도 발발하는 일은 특히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 영화 '오피셜 시크릿'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