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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우리가 밝힌 진실이 정말 진실일까? (※스포일러 주의)
2023-08-03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우리가 밝힌 진실이 정말 진실일까?


영화 탈진실 (The Post-Truth World) │2022

감독: 천이푸, 주연: 장샤오취안, 천하오썬, 팡위팅


▲ 영화 '탈진실' 포스터


억울한 피해자의 진실을 밝혀주는 저널리스트는 영화 속 주인공으로 활약하곤 한다. 그는 제법 흔하게 저널리즘 시네마의 캐릭터가 된다. 하지만 흔한 만큼 여운을 남기기도 쉽지 않다. 뭔가 다른 결말에 관한 압박이 있다. 타이완 영화 ‘탈진실’(The Post-Truth World, 감독 천이푸)은 그런 흔한 진실을 파헤치는 저널리스트 이야기지만 쉽지 않은 압박을 벗어나려는 작품이다. 진실이 드러난 줄 알았는데 그 진실은 다른 진실을 가리는 일이 현실에도 있을 법하다. 그럼에도 저널리스트가 해야 할 일은 그 과정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전히 자신이 파헤친 진실이 진짜 진실이 아니라고 할 때, 저널리스트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다른 저널리스트가 다시 그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 맡겨야 할까?


▲ 영화 '탈진실' 스틸컷


2012년, 야구장 화장실에서 젊은 여성이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놀랍게도 그 여성은 국립대만대학 장학생이자 재벌가의 딸 왕스윈(잔쯔쉬안 役)이었다. 다행히 범인은 바로 체포된다. 놀랍게도 그 범인은 현장에 있던 왕스윈의 남자 친구 장정이(천아오썬 役)였다. 왜 남자친구가 여자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했을까? 경찰은 장정이의 손톱에 왕스윈의 DNA가 끼어있었던 것을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했다. 하지만, 미심쩍은 점이 있었다. 장정이는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로 했는데, 전도유망한 야구 선수가 왜 살인을 저지르는가이다. 경찰은 범행 동기를 찾아야 했다. 경찰이 찾은 범행 동기는 단순했다. 원인은 치정(癡情)이었다. 미국에 같이 가자는 장정이의 제안에 왕스윈이 거부했고, 이에 둘 사이 다툼이 벌어져 살인이 일어났다고 경찰은 결론 내렸다. 법원은 경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장정이에게 유죄를 인정,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던 살인 사건이었지만, 세상에 이 사건이 다시금 등장했다. 7년 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인터뷰 건 때문이었다.


▲ 영화 '탈진실' 스틸컷


류리민(장샤오취안 役), 그는 아내가 같은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다가 세상을 떠나갔지만 비주류 언론매체를 운영하고 진행까지 하며 진실 탐사를 위해 열정을 다하고자 한다. 이런 열정과 소신은 아름다운 가치로 평가될 수 있지만, 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이 있곤 한다. 이 영화에서는 감옥에 갇힌 장정이였다. 어느 날 류리민은 인터뷰 요청 편지를 받고 20년 넘게 복역중인 건달인 재소자 정관샤오를 인터뷰하러 교도소에 간다. 아무도 응하지 않았지만 오로지 정관샤오의 인터뷰 요청을 류리민만 응했다. 류리민이 응한 이유는 새로운 진실을 취재할 수 있을 듯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관샤오의 인터뷰 요청은 장정이의 계획이었다. 교도관들의 주위를 분산시키며 억류하는 사이 장정이가 등장해 류리민을 인질로 잡는다. 장정이의 목적은 탈옥이었다. 저널리스트를 인질로 잡고 마침내 장정이는 탈옥에 성공하게 된다. 뭔가 억울한 사정이 있음을 관객들에게 주지시키는 장면이다. 그에게는 무슨 진실이 있는 것일까? 영화는 이에 대한 궁금증을 본격적으로 일으키기 시작한다.


▲ 영화 '탈진실' 스틸컷


여기에서 제목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탈진실', 즉, 'post-truth'는 동의한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사람들의 여론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진실이 다른 고려할 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로 인식되어, 결국 진실이 아닌 것을 대중이 수용하는 현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장정이는 억울한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자 탈옥을 감행했다. 일단 그의 탈옥은 류리민의 마음부터 움직였다. 전적으로 장정이를 믿지는 않았지만 뭔가 억울한 사정이 있으니 이렇게 탈옥까지 감행한 것이 아닐까 싶게 했다. 그에게 정말 주관적인 개인의 탈진실이 아니라 진짜 진실이 따로 있을지 모른다. 진실을 추구해온 자신의 매체 정신과 맞았다. 현실적 이유는 구독자 수 늘리기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도 한몫했다. 당대의 최고살인 사건의 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니…. 구독자도 늘리면서 진실도 추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로 보인다.


▲ 영화 '탈진실' 스틸컷


하지만, 류리민이 알면 알수록 사건은 미스터리로 빠져든다. 무엇보다 사망한 왕스윈이 야구장에서 만난 기자가 있었으니 바로 자신의 아내 쉬야징이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장정이가 아니라면 자신의 아내 쉬야징이 죽였다는 말인가? 그들과 같이 만나기로 한 경비원 두성량이 있었으며, 그가 마약 중독자였다는 사실은 또 다른 미스터리를 낳는다. 급기야 왕스윈과 장정이가 왕스윈의 친구 푸린을 통해 마약류에 손을 댄 사실이 밝혀진다. 한편, 장정이는 푸린에게서 자신이 왕스윈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언 받고 그 영상 촬영본을 류리민의 딸을 통해 방송국 보도국장에게 보낸다. 하지만 막상 보도된 내용은 편집된 내용으로 오히려 장정이에게 불리한 내용이었다. 장정이는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조작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류리민에게 항의하고 류리민은 편집국장에게 편집 가공된 이유를 묻는다. 알고 보니 어이없게도 왕스윈이 마약류에 손을 댔다는 사실이 보도되는 것을 푸린 등이 원하지 않아서 매수한 것이었다.


▲ 영화 '탈진실' 스틸컷


진실은 엉뚱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 진실의 중심에는 서로를 위하는 사랑의 감정이 작동하고 있었다. 류리민의 아내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쉬야징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장정이의 약물 문제를 보도하려 했다. 진실 보도 차원에서 당연한 노릇이었다. 예비 메이저리거가 약물이라니, 더구나 쟁점이 될 게 분명했다. 이를 사전에 안 왕스윈은 자신이 사랑하는 장정이의 기사가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더 큰 기사를 제안했던 것이다. 조직적인 마약 유통과 구성원들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장정이를 지키기 위해 왕스윈이 꾸며낸 기사 소스였다.


그렇다면, 아내 쉬야징이 왕스윈을 죽일 이유가 없다는 것을 류리민은 알게 된다. 이때 류리민은 현장을 목격한 청소부에게 단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청소부의 손자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에 이른다. 손자의 범행을 할머니가 은폐하려고 장정이가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장정이는 죄가 없었다. 탈진실은 진실이 되었고 승리했다.


▲ 영화 '탈진실' 스틸컷


그러나 이렇게 밝힌 진실이 과연 진실일까? 정말 청소부 할머니의 손자 쩡징이 왕스윈의 목숨을 앗아간 것일까? 손자가 할머니를 위하는 마음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느새 류리민은 진실이 담긴 녹음 파일과 영상을 삭제하고 만다. 자신이 밝힌 진실이 담긴 그것들을 말이다. 애초에 진실을 밝힌다면서 그도 결국 진실 앞에 은폐를 결정한다. 이 영화는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이탈한다. 우리도 그런 미혹에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쩌면 이 영화에서 스토리를 끌고 가는 동아시아 정서에 익숙하기에 이것이 고민의 대상이 되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짓을 할 수 있는 정서. 결말은 모두에게 비극이다. 사랑조차 파탄 나게 하고 평생 지켜온 자신의 신념은 물론 목숨도 잃게 한다. 탈진실은 이 지점에서 우리 문화권의 사람들, 저널리스트에게 특별히 위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