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Y스토리] 일제 강점기 강제노동 기록...한일 역사교과서 비교 검증 (SNU 팩트체크 우수상 수상기) - 신호 기자
2023-08-14

■ 보도제작국 기획탐사1팀 신호 팀장


[수상기] 일제 강점기 강제노동 기록...한일 역사교과서 비교 검증


* 제14회 SNU 팩트체크 우수상

- 일제 강점기 조선인에 대한 강제노동과 강제연행 사실, 일본 법원은 인정했다? (2023년 4월 29일 방송)

- 우리 교과서는 '강제노동' 충실히 기록?…日 교과서 보기도 민망 (2023년 4월 30일 방송)



역사는 무엇일까? 국가의 흥망성쇠나 위대한 인물의 활약상을 주로 역사라고 배웠던 것 같습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개인이 감내해야 했던 삶의 모습을 역사 교과서에서 접했던 기억은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고통을 비교적 최근에서야 뉴스나 영화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것도 ‘다루지 않은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부끄러운 가해의 역사는 되도록 축소하고, 피해의 역사보다 극복의 역사를 강조하는 것이 그동안 한일 역사 교과서가 과거사를 다뤄온 태도였습니다. YTN 팩트와이에서 한일 양국의 역사 교과서가 일제 강점기 강제노동의 사실 관계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비교 검증해본 것도 그래서입니다.


지난 3월 우리 정부는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이행 해법으로 이른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습니다. 일본 전범 기업에 '조선인 강제노동'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묻지 않고 우리 정부와 기업이 손해 배상금을 대신 주는 방식입니다. 국내에서는 정치적 결정에 대한 찬반 입장과 별개로,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한 평가가 다시 점화됐습니다. '강제노동'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 우리 정부가 면죄부를 내줬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 [팩트와이] 日 법원도 인정한 '강제노동·연행'...日 교과서는 외면 (YTN 뉴스화면 캡처)


이런 흐름 속에서 나온 내년도 일본 소학교(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는 일본이 가진 과거사 인식의 현주소를 국내에서 다시 환기시켰습니다. 가장 점유율이 높은 도쿄서적은 ‘전쟁이 길어지면서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적으로 끌려와서'라고 돼있는 기술을 '강제적으로 동원되어'로 고쳤습니다. 다른 두 개 교과서 역시 '일본의 공장과 광산에서 조선, 중국 사람들이 일했다'거나 '일본에 데리고 와서 가혹한 노동을 하게 했다'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강제노동'이나 '강제 연행' 표현을 배제했습니다. 이번 개정은 2021년 4월 스가 내각이 각료회의에서 당시 조선인들이 ‘강제 연행됐다고 일괄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징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하다. 강제노동이라는 표현 역시 적절하지 않다’고 정한 기준을 충실하게 반영한 것입니다.


▲ [팩트와이] 日 법원도 인정한 '강제노동·연행'...日 교과서는 외면 (YTN 뉴스화면 캡처)


그렇다면 ‘일본 법원의 판례’는 어떤지 확인해 봤습니다. 2007년 나고야 고등재판소는 13살에서 14살 사이였던 원고들(조선인 강제 동원 피해자)을 "기망 혹은 협박으로 정신대원에 자원시킨 것이 인정되며 이것은 강제 연행이었다고 해야 한다", 또 "가혹한 노동과 빈약한 식사, 외출과 편지 제한, 급료 미지급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강제노동이었다고 해야 한다", "공장 안에서 사망하고 손가락 부상을 입었던 일은 강제 연행, 강제노동에 의해 생긴 손해로 인정된다"고 명확하게 판단했습니다. 개정된 일본 교과서는 검정 기준 가운데 정부 입장만 반영하고 법원 판례는 전혀 담아내지 않았습니다.


▲ [팩트와이] 日 법원도 인정한 '강제노동·연행'...日 교과서는 외면 (YTN 뉴스화면 캡처)


그렇다면 일본의 이같은 역사 교과서 집필 태도를 비판하고 있는 우리의 역사 기술은 어떤 모습일까요? 일본 소학교와 같은 수준인 우리 초등학교 5학년 역사 교과서 11종을 전수조사했더니 민망한 결과를 접하게 됐습니다. 일제 강점기 강제노동을 희석하는 표현 때문에 국내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던 일본 역사 교과서보다 오히려 기술이 더 부실했습니다. '탄광, 공장 등에 데려가 일을 시켰고', '전쟁에 필요한 사람과 물자를 강제로 동원', '열악한 환경에서 전쟁 물자를 만들도록 하거나' 정도로 10자 내외의 기술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 정도 기록으로 우리 초등학생들이 일제 강점기 ‘강제노동’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팩트와이] 우리 교과서는 '강제노동' 충실히 기록?...日 교과서 보기도 민망 (YTN 뉴스화면 캡처)


우리 초등학교 교과서가 일본 교과서보다 강제노동의 역사를 더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을 것이라는 일반적 기대는 사실과 달랐습니다. 우리 교과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역사를 이제서야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지만, 이것도 피해자들과 시민단체가 스스로 증인으로 나선 활동의 결과입니다. 강제노동에 대한 우리 교과서의 기술이 빈약한 이유는 교육부의 고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과서가 채택하고 있는 사회과 교육과정의 기술 방향은 '침략을 극복하고 광복을 위해 노력한 인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교실에서 배워온 역사도 그런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변화는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개정될 교과서가 채택할 2022년 기준에서는 '식민 통치와 저항이 사회와 생활에 미친 영향을 기술'하도록 하고 있는데 강제노동에 대한 설명도 보완될 것으로 기대해 보겠습니다.


▲ [팩트와이] 우리 교과서는 '강제노동' 충실히 기록?...日 교과서 보기도 민망 (YTN 뉴스화면 캡처)


일본 교과서에 왜곡된 역사가 실릴 때면 우리 정부는 일본 대사를 불러 항의하고 즉각적인 시정을 요구해왔습니다. 이럴때면 언론도 너나할것 없이 보조를 맞추면서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판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비판도 우리 스스로 초등학생들의 교과서에 침략을 극복한 자랑스러운 역사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고통받았던 어두운 과거까지 충실하게 기록할 때 더 무겁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을 이번 팩트체크를 진행하면서 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