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M스토리] 라디오 저널리즘의 단면을 엿보다. - 영화 ‘온 더 라인(On the Line)’ 리뷰 (※스포일러 주의)
2023-10-10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라디오 저널리즘의 단면을 엿보다.


영화 온 더 라인 (On the Line) │2023

감독: 로무알드 블랑제, 주연: 멜 깁슨, 윌리암 모즐리


▲ 영화 '온 더 라인' 포스터


영화의 컨셉은 단순하다. 심야 라디오 진행자에게 청취자를 가장한 납치범이 전화한 뒤 가족을 인질로 온갖 협박을 가하는 내용이다. 납치인질범은 진행자의 목숨은 물론 건물 전체를 모두 폭파해 버리겠다고 말한다. 이유는 온전히 진행자 개인에 대한 원한이다. 다만, 추리 스릴러 포맷을 보여주기 때문에 결말을 알고서는 실망을 할 수 있는데, 그런데도 라디오 저널리즘의 단면을 생각할 수 있는 장면들이 꽤 있다.


우선 주인공 앨비스(멜 깁슨 役)는 LA에 있는 KLAT방송국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40년 동안 진행자를 맡고 있다. 좋게 말하면 장수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 같지만, 새로운 젊은 세대의 청취자들이 그간 많이 유입되지 않은 점을 방증한다. 올드 애청자들과 진행자가 같이 늙어가는 셈이다. 영화에선 그를 80대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앨비스는 진행 중 거친 입담 때문에 대표에게서 경고를 듣는다. 대표는 적절한 선을 지키지 않으면 자리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고 친구로서 강하게 어필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앨비스가 40년 동안 진행자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거친 입담과 극단적인 상황의 조성에 있었다. 대표는 분기별 청취율 표를 들면서 답보 상태라고 지적하는데, 만약 청취율이 잘 나왔다면, 적절한 선을 지키라는 지적 따위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영화 '온 더 라인' 스틸컷


앨비스는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새로운 인턴 딜런(윌리엄 모즐리 役)에게 무심코 더 이상 듣지 않는 라디오에 왜 왔냐고 타박까지 한다. 딜런은 이에 대해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한다. 사실이기 때문이리라. 다만 40년간 장수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할 뿐이다. 그 말이 오히려 나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앨비스의 비판에 딜런은 당황해한다. 그것도 생방송 중에 난데없이 말이다. 물론 앨리스는 농담이라고 했음에도 뼈가 있는 말이었다. 외연의 확장없이 청취자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가 왜 거칠고 자극적인 방송 진행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심야 라디오 프로이기 때문에 더 낮은 청취율을 기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앨비스는 급기야 황금 시간대 진행자와 드러내놓고 다툼을 보이기도 한다. 상대 프로그램 진행자도 내 프로그램을 넘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알력 다툼이 있는 이유는 전반적인 하락 기조가 강할수록 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전체 미디어 환경에서 레거시 미디어인 라디오, 스스로 모두 위축되어 있지만 여전히 매체 영향력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청취자들은 진행자와 대화를 나누려고 방송국 건물에 무단 침입을 시도하며 자신의 주장을 방송에 내보려 한다. 실제로 로비에서 직접 난입하는 청취자를 마주한 앨비스는 라디오는 얼굴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 방송을 하는 게 낫다고 가까스로 돌려보낸다. 물론 이 장면은 현실과 다를 수 있었다. 요즘은 일반 라디오 프로그램도 보이는 라디오 시스템을 유튜브 등 SNS와 연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비유적 설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앨비스의 프로그램이 인터넷 방송에 넋 놓고 있지는 않다. 인터넷 스타인 유명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구성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물론 관객들은 협업인지도 모르고 영화에 빠져들어야 한다. 하지만 젊은 인터넷 진행자가 중심축일 수는 없다. 청취자의 연령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영화 '온 더 라인' 스틸컷


다시 납치범으로 돌아가보자. 납치범은 단순히 인질극이 아니라 테러범 수준으로 자기 뜻을 관철하려는데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점은 그가 가진 원한이다. 첫째는 자신이 방송국의 보안 요원이었는데 하찮은 취급을 하는 진행자의 행태에 불만을 품었다고 했다. 일종의 그림자 같은 존재로 대하는 진행자에 비판을 가하는데 이는 비단 진행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방송국은 매일 마주치지만 크게 인식하지 않는 미화원, 보안 요원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유지될 수 있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만 주목을 받는 경향이 크다. 영화는 이러한 점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종국에는 가볍게 발을 뗀다.


이 영화에서 특이한 진행 구성이 눈에 들어왔다. 담당 작가는 진행자와 같이 스튜디오 안에 들어와서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스튜디오 밖에 있는 피디도 비록 인턴이지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안 요원도 방송을 위해 매우 중요한 존재인데, 인사조차 받지 않는 앨비스를 통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셈이다.


▲ 영화 '온 더 라인' 스틸컷


납치범이 앨비스에게 원한을 갖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앨비스에게 모욕을 당하고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친구는 바로 앨비스가 진행하는 심야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였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것은 개인의 인성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인성을 넘어서는 요인도 있을 것이다. 앨비스가 괴롭힌 이유는 레거시 미디어인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그것도 심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앨비스가 거칠게 굴었기 때문이다. 그가 버티기 위해 취한 행동의 유탄이 작가에게 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너무 진지하고 무겁지만,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이 겪고 있는 저널리즘의 상황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의 결말은 좀 어이없었다. 자작극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멀리 미국 LA까지 건너온 딜런에게 주는 신고식 선물이었다. 그 자작극 전체를 모두 라이브로 방송을 했으니 프로그램 인터넷 게시판에 문제가 없었다면, 그 청취자들 또한 대단한 이들일 것이다. 딜런은 인터넷 진행자와 콜라보했으니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딜런이 너무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계단에서 굴러 죽은 것도 자작극이었다. 그것조차 액자식 설정이라니 더욱 황당할 수 있었다. 자칫 그들은 정작 황당하지 않아도 관객들은 그럴 수 없었다. 이런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매체가 갈수록 마니아와 팬들을 위한 방송을 만들 때 오히려 일반 사람들이 외면할 수 있다는 점을 영화 그 자체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어쨌든 시트콤처럼 끝났지만, 우리는 라디오 저널리즘이 봉착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다시금 곱씹어 볼 수 있다.


▲ 영화 '온 더 라인'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