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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미나마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영화 미나마타 리뷰 (※스포일러 주의)
2023-09-11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미나마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 미나마타 (Minamata) │2020

감독: 앤드류 레비타스, 주연: 조니 뎁, 사나다 히로유키, 미나미, 쿠니무라 준 등


▲ 영화 '미나마타' 포스터


영화 ‘미나마타’(Minamata, 2020)는 뒤늦게 발견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때문이다. 영화의 내용이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는 오늘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미나마타와 원전 오염수는 모두 바다와 관련이 깊다. 미나마타는 일본 구마모토(熊本)현 지역의 마을 이름이자, 바다 오염으로 인한 질병 이름을 뜻한다. 미나마타 소재의 화학기업 칫소(窒素)가 촉매제로 사용한 메틸수은을 그대로 바다에 방류해서 그 바다의 어패류를 섭취한 주민들 사이에서 발생한 병이다. 처음에는 전염병으로 여겨졌지만, 나중에 원인이 밝혀졌음에도 기업과 지자체, 그리고 중앙정부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수은 중독 증상을 보이며 경련 마비 등 신경계통의 장애 증상만이 아니라 여성은 기형아를 출산하기도 했다. 2001년이 되어서야 피해자가 집계되었는데 사망자 수만 1,784명이었다. 인과관계가 채 증명되지 않았다는 숫자까지 더하면 실로 엄청난 피해였다. 1만여 명이 보상을 받았지만, 아직도 피해 인정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1930년대에 메틸수은을 방류해 1950-60년대에 실체가 알려졌으니 얼마나 피해가 광범위할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영화 ‘미나마타’는 현장에 파견된 취재 기자의 활동을 중심으로 당시 주민들의 투쟁과 삶을 촘촘하게 얽혀 넣었다. 배우 조니 뎁은 종군 기자였던 윌리엄 유진 스미스 역을 맡아 깊은 내면 연기까지 도달해 보였다. 윌리엄 유진 스미스(William Eugene Smith 1918년 ~ 1978)는 종군 기자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의 격전지를 주로 현장 취재해 크게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명성일 뿐 영화 속 유명한 종군 기자의 현실은 처참하다. 술을 들이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또한, 밀린 빚에 시달리고 다섯 아이의 아버지로서 제대로 가장 역할을 하지 못해 자책감에 시달린다. 이런 상황에 부닥치자 자신이 파산했다며 라이프 매거진의 대표인 로버트를 찾아가지만, 오히려 로버트는 텔레비전 때문에 자신의 잡지사가 망하게 생겼다고까지 말한다.


▲ 영화 '미나마타' 스틸컷


이런 와중에 유진에게 일본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1971년 어느 날의 일이었다. 일본 후지 필름의 일 때문에 아일린과 게이치가 방문했던 것. 하지만 후지 필름 건은 핑계였고, 아일린은 진짜 온 목적을 말한다. 아일린은 독성 폐수를 무단으로 방류해 주민들이 질병에 시달리고 있고, 이를 세계에 알려줄 적임자로 당신을 꼽았다고 말한다. 당연히 처음에는 거절한다. 그럴 일이 있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아일린이 건네준 자료를 본 유진은 그다음 날 바로 라이프 매거진의 로버트에게 달려간다. 자신을 꼭 이곳에 보내 달라고 거의 협박을 한다. 믿지 못하며 망설이는 로버트를 계속 설득한 유진은 우여곡절 끝에 미나마타에 도착한다. 우울한 느낌은 있지만, 유진에게 조건은 좋았다. 그곳에서 아일린의 소개로 마쯔무라 가족의 집에 머물게 된다. 아일린 등이 미국의 작업실을 흉내 내어 암실까지 따로 마련해준다. 하지만 이때부터 유진은 몇 가지 장애물에 부딪히게 된다. 가장 큰 장애물은 주민들이 사진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장애물은 칫소 기업의 방해와 회유였다. 당시에는 사진 촬영에 대해서 불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마쯔무라 가족에게 뇌성마비 장애인 첫째 딸 아키코가 있었지만,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더구나 아키코는 수은 때문에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이런 아키코의 존재 자체가 메시지였지만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유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지역 주변 현장 사진과 기업의 폐수 실태, 주민의 투쟁 상황을 부지런히 촬영한다. 또한, 주민과 소통하고 대화하며 최대한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해야 진실이 담겨진 사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 영화 '미나마타' 스틸컷


무엇보다 칫소 기업은 강고했다. 주민들의 시위를 최루탄을 던져가며 방해했다. 칫소 사장은 유진을 직접 만나 우선 회유한다. 물에는 많은 성분이 있고 칫소 기업이 방류하는 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삼중 수소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러면서 사장은 5만 달러를 주며 미국으로 그냥 돌아갈 것을 종용한다. 사실 이 정도 액수의 돈은 유진을 미혹시킬 만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거절하고 나서 마침 야마자키 가족과 함께 있었는데,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압수 수색을 한다. 밤새 유진은 촬영한 사진들을 인화했는데, 다음날 밤에 암실을 누군가 불태워버린다. 그간 찍은 사진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진 것이다. 절망에 빠진 유진은 로버트에게 해괴한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더이상 사진은 없고 당장에 미국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새벽에 난데없이 술 취한 유진의 지껄임에 다음 주까지 사진을 반드시 보내와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 통화로 오히려 유진은 로버트가 매우 벼랑 끝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영화 '미나마타' 스틸컷


그런데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시 희망이 생기게 된다. 희망은 결국 소통하고 친교했던 주민들에게서 나왔다. 술에 취해 낮에 나룻배에 잠든 유진에게 시게루가 찾아와 카메라를 준다. 시게루에게 자유롭게 쓰도록 허락했던 유진의 카메라였다. 그 카메라를 대하며 유진은 그날 밤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묻는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주민들은 어느 순간 하나둘 손을 들더니 모두 찬성한다. 잃어버린 사진을 다시 촬영할 수 있게 되었던 차에 1971년 3월, 칫소 기업의 이사회가 열리는 날 그 앞에서 주민들은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열게 된다. 유진도 현장에 참여하게 되지만 불행하게도 회사 측의 일방적인 폭행으로 중상을 입는다. 영화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손을 부각하지만, 그는 실제로 척추 손상과 실명(失明)을 하게 되고 그 후유증으로 1978년 목숨을 잃고 만다.


▲ 영화 '미나마타' 스틸컷


그런데 새옹지마였다. 이렇게 중상을 입으면서 지역 사람들의 마음도 달라진다. 그가 입원한 병원에 무엇인가 전하며 말한다. “일전에 딸을 잘 안아주었다죠. 미안해요.” 유진은 일전에 아키코의 엄마 아사코와 아일린이 장을 보러 가며 아키코를 맡긴 적이 있는데 그때 노래를 불러주면 시간을 잘 보냈던 것을 떠올렸을 수 있었다. 그 사내는 아키코의 아빠 마쯔무라였고, 그가 준 물건은 놀랍게도 불타버린 줄 알았던 사진 인화 필름이었다. 마쯔무라가 아마도 기업의 사주를 받고 암실에 불을 질렀지만 차마 필름을 태우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딸에게 잘 대해준 유진에게 못된 짓을 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퇴원한 유진은 아사코와 딸 아키코가 같이 목욕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도록 허락을 받게 된다. 태아 때부터 미나마타병에 걸린 아키코의 사진은 당시 라이프 매거진에 실려 실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었다. 문제의 그 작품 사진은 이렇게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아키코 가족과 서로 교감이 없었다면, 이 사진은 세상에 나올 수가 없었다. 세계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데도 이바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널리스트의 요건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었고, 영화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이었다.


▲ 영화 '미나마타' 예고편 스틸컷


이제 앞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언급한 점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영화는 엔딩 자막을 통해 아직도 수은 중독 피해자들은 책임 인정과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2013년 일본에서 수은 중독 질병은 없다고 공식 선언했다. 일본의 전적을 생각했을 때,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과연 안전할까? 언론은 지금 과연 진실을 보도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윌리엄 유진 스미스를 생각할 때 어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저널리스트에게 여전히 바다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삶의 터전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