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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국민 속여 전쟁터에 끌고 간 청춘들의 죽음 막아설 때 - 영화 ‘더 포스트’(The Post) 리뷰
2022-12-06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국민 속여 전쟁터에 끌고 간 청춘들의 죽음 막아설 때


영화 더 포스트 (The Post) │2017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 영화 '더 포스트' 포스터


1971년 닉슨은 ‘워싱턴 포스트’의 모든 대통령 관련 취재를 막는다. 종교활동은 물론 영부인 취재까지 사소한 것까지 모두 금지하도록 측근에 명령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을 연상하게 만드는 당시 이 언론 탄압의 원인은 분명했다. 정부가 공개를 불편해하는 문서를 ‘워싱턴 포스트’가 전격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펜타곤 리포트 보도’ 사건이었다. 영화 ‘더 포스트’에서 이런 비밀문서의 공개는 단순히 보도를 막는 세력과 보도하려는 이들의 신경전이나 지략 싸움에 그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영화의 상당 부분은 보도하려는 이들의 내적 충돌과 극복을 그리고 있다. 특히, 언론사 경영자의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렇게 심층적으로 다룬 작품은 드물다. 거꾸로 정관계와 언론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은 얽혀 있는 층위가 내밀하게 드러난다.


▲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이자 사장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 役)은 사세 확장을 위해 주식 상장을 앞두고 있어 어느 때보다 위기관리가 필요했다. 이때 오랜 친구인 국방부 장관 맥나마라가 언질을 준다.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가 나올 듯싶다고. 캐서린이 바로 편집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 役)에게 알아보니 자사 ‘워싱턴 포스트’는 관련된 취재가 없었다. 벤이 인턴 기자를 통해 뭔가 낌새를 알아채려 할 찰나 경쟁사 ‘뉴욕 타임즈’는 엄청난 특종을 터트린다. 펜타곤 리포트를 입수해 상당히 공력을 들인 끝에 1면에 전격 게재했던 것.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트루먼, 케네디, 존슨 그리고 닉슨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역대 정부가 국민에게 거짓으로 속여온 것들을 담고 있었다. 벤은 캐서린이 국방부 장관 맥나마라를 통해 언질을 받은 내용이 이런 보도인 줄 생각지 못했다. 벤은 엄청난 특종이라서 ‘워싱턴 포스트’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주인 캐서린(메릴 스트립)은 이 같은 벤의 주장에 주저한다. 주식 상장도 그렇고 맥나마라와 쌓은 오랜 우정도 발목을 잡는다. 여기에 더해 참모와 이사들도 반대한다.


▲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이런 와중에 닉슨 정부는 법원에 보도 금지 요청을 하게 된다. 추가로 보도할 경우 언론인을 구속하겠다고 협박했다. 이때 중요한 관건은 누가 ‘뉴욕타임스’에 펜타곤 보고서를 넘겼는가였다. 포스트의 편집부 기자 벤 백디키언(밥 오덴커크 役)은 자료 제공자를 함께 공무원으로 일했던 댄 엘즈버그(매튜 리즈 役)라고 추정하고 어렵게 그를 찾아 나섰고 마침내 연락이 닿는다. 댄도 ‘뉴욕타임스’가 막혔기에 다른 매체가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댄은 왜 내부고발자가 된 것일까? 그는 1966년 베트남 전쟁의 직접 실상을 파악하고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도 알렸지만, 처음의 태도와 달리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댄은 역대 정부가 알고도 묵인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애초 이기기 어려운 베트남 전쟁을 그대로 버려두고 있었던 그들에게 분노하고, 수많은 미국 청년들의 죽음을 막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몇 년에 걸쳐 47권의 보고서를 몰래 복사하고 이를 ‘뉴욕타임스’에 제보했다.


▲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이 영화가 단순하지 않은 점은 바로 국방부 장관 맥나마라가 이런 문서를 왜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맥나마라가 보고서를 작성한 이유는 현재 언론 보도가 아니라 후대에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자료로 쓰일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4천 쪽에 달하는 보고서 사본을 ‘워싱턴 포스트’에 제공한 댄은 당장 이런 사실을 언론에 알려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봤다. 알 수 없는 미래에서 이뤄질 연구보다는 지금의 행동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편집장 벤도 같은 생각이었다. 국민은 알 권리가 있고 언론이 이를 실현해야 한다고 봤다. 비록 국가 기밀을 누설해서 간첩죄가 적용된다고 해도 감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캐서린도 이런 보도가 ‘워싱턴 포스트’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하나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법률 자문 변호사가 지적한다. 만약 ‘뉴욕타임스’에 소스를 제공한 정보원이 ‘워싱턴 포스트’에게도 제공한 동일 인물이라면, 공모죄가 성립된다고 봤다. 이는 단순히 편집장이나 일선 기자가 법정에 서는 문제가 아니라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 캐서린도 감옥에 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당연히 이사진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결단은 오로지 전문 경영인이 아니고 저널리스트 출신도 아닌 발행인이자 사주인 캐서린이 내려야 한다. 절친이자 펜타곤 보고서 작성의 당사자인 맥나마라도 경고했다. 그 경고는 정부를 편들기 위함이 아니라 캐서린을 염려하는 마음도 담겼다. “닉슨은 개자식이고 자신을 위해 당신을 파괴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위인이라고요.”


▲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이제 두서없이 섞여 있는 보고서 뭉치를 들고 온 기자들이 퍼즐 맞추듯 기사에 반영하고 조판까지 다 끝내 놓은 상황에서 인쇄 개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캐서린은 결단을 내린다. “까짓거 냅시다.” 어안이 벙벙해 있는 이사진들에게 캐서린은 덧붙인 말은 “나는 이제 자러 가야겠어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속으로 얼마나 긴장하고 걱정됐을까? 단지 주식 상장에 타격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본인이 감옥에 갈지도 모르니 말이다. 결국, 법정에 서게 됐지만 외롭지 않았다. ‘뉴욕타임스’ 외에 수많은 신문사가 펜타곤 보도에 나섰기 때문이다. 법정에는 많은 신문사 관계자들이 출두하고 있었다. 법원은 과연 어떤 판결을 했을까? “언론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섬겨야 한다." 논지는 명확했다. 국익의 요체는 국민이다. 당장에 수없이 많은 젊은이가 무모하게 헛되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오빠고 형이고 동생이었다.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더 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영화의 맥락상, 닉슨은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사람이라는 맥나마라의 말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배경을 짐작하게 한다. 자신이 선거에서 이기려고 상대 정당의 당사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는 일쯤은 충분히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물론 이런 워터게이트 사건도 저널리즘과 연관이 깊다. 그들은 다시 언론에 적대적으로 나서고 진실을 은폐하기에 이른다. 결국, 닉슨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스스로 그만두는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만약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아울러 여러 매체가 보도하지 않았다면, 워터게이트 사건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정부와 법원이 언론에 재갈을 물린 사례를 극복한 경험이 있기에 워터게이트 사건도 보도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과연 정권의 본색이나 정체성은 변화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문은 왜 역대 여러 대통령이 정치 진영을 넘어 30년 동안 은폐했는가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창피하기 때문이었다. 고작 베트남에 미국이 지는 결과를 인정하기 힘들었다. 이는 민주당, 공화당은 물론 진보적인 케네디, 빌런 같은 닉슨도 모두 같았다. 권력의 속성 앞엔 누구도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이런 창피함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전쟁 시작 후 8월이면 합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정도로 무시했던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한다면 푸틴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우크라이나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처럼 버릴 줄 알았던 대가였다. 지금 점령지라도 확보하고 후일을 도모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애초부터 베트남의 영토를 차지할 생각이 없었다.


러시아가 다른 점은 언론이다. 처음부터 민주적 언론이 보장되어 있었다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일으킬지 여론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사실 푸틴에게 창피함보다는 권력에서 쫓겨날 공포가 더 우선일지 모른다. 미국 국민에게는 전쟁 패배보다는 젊은이들의 목숨이 중요했다. 러시아에서는 전쟁의 패배보다 젊은이들의 목숨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를 반영하는 언론의 부재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과연 러시아의 언론들은 영화 ‘더 포스트’에 나온 내용을 고민하고 있을까? 물론 미국의 언론 환경도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의 미래도 그것에 달려있다.


▲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