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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스토리] 영화 '신문기자'
2019-10-25

영화 '신문기자' 

 심은경 주연의 일본 영화 <신문기자>는 제목이 주는 동적(動的)인 느낌과는 달리 예상외로 정적이고 평면적인 작품이다. 조금 더 역동적이고 입체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런저런 사정을 생각하면 그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사정이란 현 아베 정권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아베 정권의 스캔들을 다뤘다. 그리고 그 스캔들은 현재 일본 사회에서 적당히 ‘묻힌’ 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영화가 밋밋할 수밖에.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그건 정말 안될 일이다. 영화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변명’이다. 이런 (정치적) 이유, 저런 (사회적) 이유로 영화에 대한 관객의 만족도가 모자랄 수밖에 없었다는 말만큼 황당한 것은 없다.

 

 <신문기자>는 일본 아베 정부의 가케(加計) 학원 스캔들에서 착안한 것이다. 가케 학원 문제는 2017년 ‘오카야마’라는 이름의 이과대학에 수의학과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온 것인데 이 대학의 소유주인 가케 학원 설립자와 아베 총리가 오랜 친구 사이였고, 그래서 규제가 많은 수의학과 신설에 있어 특혜를 줬으며,   그 과정에서 일정한 정치적 거래를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가케 학원 스캔들은 마침 또 다른 비리 사건인 모리모토 학원 사건과 겹쳐 아베 정권 최대의 위기를 가져왔다. 모리모토 학원은 새로 설립할 초등학교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국유지를 헐값에 사들였는데 그럴 수 있었던 데는 학원 재단의 이사가 아베의 부인 아키에 여사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뭐? 이 희대의 게이트는 현재 유야무야된 상태다. 아베는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한다.

 

 어쨌든 영화는 명백히 두 가지 사건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실제 사건과는 다르게 이야기를 다소 엉뚱하게 픽션화한다. 거의 유일하게 같은 내용은 이야기가 대학 신설을 둘러싼 정계 비리로부터 비롯된다는 것, 그리고 그 음모를 여기자가 밝혀낸다는 설정이다. 실제 여기자는 모치즈키 이소코였고, 영화 속 여기자는 한국 여배우 심은경이 맡고 있다. 

 그 두 가지를 제외하고 영화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나아 간다. 예를 들어 영화는 이런 식이다. 일본 정부가 허가한 신설 대학이 사실은 생화학 무기 연구소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여기자 강간사건을 시작으로 내무부 고위 관료의 자살 등 영화는 여러 맥거핀(눈속임을 위한 장치 혹은 에피소드)들을 겹겹이 내세운다는 것인데 문제는 영화 앞의 장식들이 화려한 것에 비해 영화 뒤의 결말로 가서는 이렇다 할 충격과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측컨대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 아베와 관련된 것이고 아베가 현재도 여전히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정말처럼 씨줄날줄로 엮어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공분에 몸을 떨게 만들며, 결국 거리의 시위로 나가게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세상이 진실에 눈을 감았는데 영화만 진실을 얘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가 시종일관 ‘평평한’ 분위기로 일관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정치적 후환’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건 영화가 너무 빨리 나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시대가 좀 지난 다음에 나왔어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아베 퇴임 이후나 레임덕 시기에. 그러면 영화가 너무 비겁할까?


 영화란 늘, 까지는 아니더라고 종종 시대의 목소리를 정확히 대변해야 옳다. 그게영화가 지닌 본래적 사명일 수 있다. 한편으로 그건 영화가 갖는 언론으로서의 기능이기도 하다. 그 모든 면으로 볼 때 영화 <신문기자>는 시대적 쾌감을 주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는 마치 <대통령의 사람들>에서 닉슨의 워터게이트 음모를 파헤치는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포드)나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만)과 같은 ‘열혈 신문기자’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우왕좌왕한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처럼 신부와 사제의 아동 성추행을 폭로했던 보스톤 글로브지 기자들의 열정 같은 것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신문기자>속 기자들은 늘 풀이 죽어있고 활기차게 뛰어다니지 않으며 편집국은 정적에 휩싸여있다. 이건 기자들의 모습이 아니다. 실제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그 침잠의 분위기 마냥 결국 영화 속 학원 스캔들도 미해결 상태로 끝을 맺는다. 현실의 일본 사회가 사건을 덮었던 것처럼.


 영화 <신문기자>는 작금의 일본 영화들이 지니는 ‘무기력증’을 다시 목도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작품이다. 자민당 50년의 장기 흑역사가, 영화가 지녀야 할 저널리스트적 예봉을 모조리 마모 시킨 탓일 수도 있다. 우리라고 저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신문기자가 신문기자 답지 못하게 기능하는 세상을 계속해서 용인하는 한 우리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영화 한 편은 늘 세상을 향해 시그널을 던진다. 그걸 읽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이 영화 <신문기자>가 어떻게 읽히는가. 모두 자문(自問)이 필요한 때이다. 


영화 평론가 오동진 (YTN 기자 출신, 2019 레지스탕스영화제 집행위원장, 2019 BIFF 아시아필름마켓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