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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사람 낚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댓글부대’
2024-04-08

■ 윤성은 영화평론가


사람 낚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댓글부대'


영화 댓글부대│2024

감독: 안국진 │ 주연: 손석구, 김성철, 김동휘, 홍경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5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던 안국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 극장에 걸렸다. 사회성 강한 이야기를 스타일리시한 블랙코미디로 쌈박하게 포장한 솜씨가 걸출했기에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그것도 손석구라는 스타와 합작한 ‘댓글부대’에 대한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재미나 만듦새는 나쁘지 않은데 흥행면에서 다소 부진하다는 게 아쉽다. 제작진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음을 예상했을 터라, 그 아쉬움은 사실상 결핍으로 느껴진다. 상업영화라면 영화관을 나올 때 관객들의 기분을 배려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작소설인 장강명 작가의 ‘댓글부대’(2015)는 엄청난 양의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동시대 언론의 방향을 좌우하는 댓글부대의 행태와 존재를 파고든다. 임상진 기자는 여론조작 댓글부대 ‘팀-알렙’의 멤버 찻탓캇으로부터 제보를 받고 인터뷰를 하게 된다. 찻탓캇은 합포회라는 수수께끼 같은 조직이 자신들을 이용해 어떤 식으로 그들 조직에 대항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무력화시켰는지 털어놓는다. 그가 묘사하는 특정 성향을 가진 카페 혹은 사이트들은 실명만 바뀌었을 뿐 온라인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익히 들어왔으며, 실제로 많은 이들이 가입되어 있는 곳이다. 팀-알렙은 각 커뮤니티 가입자들의 성향을 철저히 파악해 그들이 무슨 댓글에 어떻게 반응하고 그것이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키는지 예측함으로써 단단했던 유대감을 허물고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흥미진진하면서 오싹한 이야기로, 본래 기자출신이었던 작가의 취재 노하우가 잘 녹아 있고, 밀도와 속도감이 돋보인다.

영화 ‘댓글부대’는 임상진(손석구) 기자의 이야기에 제보자의 인터뷰가 들어간 액자식 구성을 띠고 있다. 이러한 큰 프레임 이외에 팀-알렙의 멤버들 이름부터 이들을 이용한 조직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내용과 디테일은 변형되어 있다. 특히, 선정적인 부분들은 모두 빠져 있는데, 원작에서는 팀-알렙이 여론조작으로 번 돈을 안마방이나 유흥업소에서 소비하는 모습, 합포회의 유흥문화에 물들어가는 모습 등이 꽤 직설적으로 묘사된다. ‘내부자들’(감독 우민호, 2015)에서 정치, 경제, 언론계 인사들이 난잡한 술자리를 통해 단단히 결속하듯 합포회도 청년들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략함으로써 그들의 세계에 협조하도록 포섭하는 내용이 꽤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영화에서는 이런 부분들 대신 대기업 만전의 여론조작(으로 추측되는 사건) 때문에 쉬고 있는 임상진 기자가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그리고 팀-알렙 내부의 갈등을 많이 보여준다. 그들의 작업이 한 여성의 자살로 이어지면서 양심의 가책과 회의를 느낀 멤버가 그 동안의 행적을 까발리게 되었고, 위기에 처한 찻탓캇이 임상진을 찾아온다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기자로서의 생명, 아니 사회인으로서의 생존이 달린 임상진의 절박함과 댓글부대 멤버들의 사활이 교차하는 내러티브는 긴장감도 있고, 재미도 있다. 단 한 가지 문제는 이 가슴 졸이는 이야기조차 어그로로 몰고 간 결말부다. 물론, 임상진이 만전을 때려잡으면서 업계의 스타가 되는 해피엔딩은 유치했을 것이고 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판타지로 탈색시켰을 것이다. 다만, 찻탓캇의 장황한 이야기 자체가 다 진실이 아니었다고 말해버린다면, 영화 내내 가슴을 졸였던 관객들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안국진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댓글부대의 진실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 실체와 존재여부는 알 수 없지만, 없다고 말하기에는 증거도 없고 현상만 있다.”고. 말하자면, 이 영화의 꺼림칙한 결말은 이러한 감독의 심중을 정확히 드러내고 있다. 관객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다른 문제다.

자, 그렇다면 ‘댓글부대’에 달린 별점과 한줄평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확인된 바는 없지만 영화 개봉 즈음에는 댓글 알바가 존재한다는 풍문이 있고, 그것이 음모론이라 해도 불특정 다수가 이 영화에 내린 평가와 나의 감상평이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말 많은 이 영화의 결말조차 감독의 절묘하고 날카로운 연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들이 더 많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이처럼 어떤 사안이든 음모론이나 댓글부대의 실체가 밝혀지기 전에는 여론(輿論)의 속성 중 하나가 개인의 생각과 의견은 잘 담지 못한다는 것임을 인지하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