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INSIDE

[M스토리]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양치기’
2024-06-12


■ 윤성은 영화평론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양치기



영화 양치기│2024

감독 : 손경원 │ 주연 : 손수현, 오한결



▲ 영화 '양치기' 포스터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수현’(손수현)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예비신랑인 ‘영우’(조경창)도 교사라서 두 사람은 ‘방과후학교’ 봉사도 함께 하고 있다. 영화는 수현의 봉사 생활부터 보여준다. ‘은지’라는 소녀의 머리를 묶어 주고, 머리끈을 주기도 하는 그녀에게서 아이들에 대한 사명감과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동료 교사들에게 청첩장을 돌릴 때까지만 해도 이런 수현에게 별다른 걱정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수현의 반 학생인 ‘요한’(오한결)이 그녀의 삶을 뒤흔들어 놓기 시작한다.



▲ 영화 '양치기' 스틸컷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요한은 자신에게 우산을 건네는 친절을 베풀었던 담임 선생에게 노골적으로 접근해온다. 그는 수현의 집 앞까지 쫓아와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하고, 그 전에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요구한다. 수현의 집에서 그는 허겁지겁 빵으로 배를 채운 다음, 지금은 나가야 하니 다음에 얘기하자는 수현을 끌어안고, 가슴을 만지는 추행까지 저지른다. 이 모든 과정에서 수현의 잘못은 경솔하게도 학생을 집으로 들였고, 요한의 몸에서 멍을 발견하고도 당장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고작 드레스 투어에 늦지 않기 위해서 아이의 절박한 상황을 외면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그녀가 겪게 되는 일들은 이러한 잘못들에 비하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진다. 요한은 수현이 자신을 때렸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것도 그를 짐승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그의 부모에게. 자신의 신뢰를 져버리고 애정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수현에게 누명을 씌운 요한은 영락 없이 철없는 아이다. 그러나 그가 폭력의 피해자고, 어리다는 이유로 다 용서하기엔 수현이 치르게 되는 고통이 너무 크다.



▲ 영화 '양치기' 스틸컷


이 때부터 ‘양치기’는 토마스 빈터베르의 ‘더 헌트’(2012)를 소환한다. 21세기의 마녀사냥은 전통적 권력의 상하관계를 전복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으로, 역시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도 ‘클라라’라는 내성적인 소녀가 교사이자 아빠의 친구인 ‘루카스’(매즈 미켈슨)가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말하면서 일이 일파만파로 커진다. 무고한 루카스는 자신의 평판이 무너져 내리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양치기’는 ‘더 헌트’의 한국 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과정이 유사하게 전개되는데, 본래 예민한 수현은 루카스 보다 훨씬 날카로워지고, 이성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양상을 보인다. 여기서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또 한 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괴물’(고레에다 히로카즈)은 ‘더 헌트’나 ‘양치기’와 달리 두 소년의 남다른 관계가 중심에 있지만, 교사가 학생의 거짓말로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면서 큰 피해와 고통을 겪게 되는 부분은 흡사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 편은 공히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늘 옳거나 피해자는 아니기에 공동체에서 이슈가 발생했을 때는 사건의 외피를 벗겨내고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수고와 노력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 영화 '양치기' 스틸컷


한편, ‘더 헌트’가 공동체의 정의를 다루듯, ‘양치기’도 두 사람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행태를 보여주며 가해자와 피해자, 유죄와 무죄 사이를 계속 재단하게 만든다. 교감은 요한과 그의 가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을 확인하는 대신 수현을 압박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 하려 한다. 요한에게도 수현에게도 관심이 없는 그는 이 일이 커져 교장 승진에 방해가 될까 노심초사해 할 뿐이다. 또한, 동료 교사들, 심지어 약혼자조차 수현의 억울한 심정을 들어주는 대신 점차 그녀를 경계하고 등을 돌린다. 수현 학급의 학생 하나는 담임의 약점을 잡아 심각한 장난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수현이 점차 이성을 잃고 난폭해져 가는 것에 이들이 일조했음은 명백하다. 영화는 캐릭터 구축이나 서사 진행에 있어 간혹 비틀대기도 하고 무리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국적의 유사한 영화들이 증명하듯 이것은 현대 사회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반드시 등장인물들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 얼마만큼의 유죄일까.



▲ 영화 '양치기'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