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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산책] 일상미학, '빨래'가 불러온 삶 이야기 - 심성희 작가
2022-09-14


심 성 희 (Sim Sunghee)


- 1975년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 졸업,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실내환경디자인 전공

- [심오하지 않기], [하쿠나 마타타], [일상, 완상하다] 등 개인전, 단체전 다수 참여

- 수상 : 서리풀 ART FOR ART 대상전 우수상, 앙데팡당 피카디리미술대전 작가상, 세계미술작가교류협회 아트챌린저 공모전 대상, 아시아프 3년 연속 히든아티스트 부문 전시


▲ 슈필라움 [Spielraum], 162.2x130.3cm, Oil on canvas, 2022


나는 익숙해진 일상에 감정을 개입시켜 현실과 이상의 경계가 모호한 순간을

‘빨래가 널린 풍경’을 통해 시적, 혹은 회화적으로 변용된 아름다움으로 표현한다.


현실과 이상이 상충(相衝)하는 일상의 상반된 관점에서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전제 없이

감성과 상상력에 충실한 내면 풍경으로 ‘일상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현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 다양성에 바탕을 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의

일상생활을 표현하는 것이 ‘일상미학(日常美學)’이다.


- 작가 노트 중


▲ 야반 [夜半], 162.2X112.1cm, Oil and Fabric on canvas, 2022


볕이 좋은 마당에 잘 마른 빨래, 왠지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진다.


'빨래'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심성희 작가의 초대전이 YTN 아트스퀘어에 열렸다.


심성희 작가는 빨래줄에 가지런히 걸쳐진 천 기저귀, 운동복, 옷가지로 우리 삶의 소소한 흔적을 그려낸다. 건조기가 들어선 탓에 요즘 빨래가 널린 풍경을 잘 볼 수 없어서인지, 마음 한켠의 아련함을 자극하기도 한다.


작가의 그림은 정물처럼 반듯하고 정교하지만, 자세히 보면 대상에 붓질을 켜켜이 쌓아, 생동하는 힘을 담았다.


심 작가는 오랫동안 건축사로 일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빨래가 널린 배경에 다양한 형태의 공간,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작가는 실제 건축 디자인에서 표현의 제약이 있었던 공간을 더해 상상하는 재미를 준다. 유럽풍의 건축물이나 우주 공간, 분홍색 하늘 등 꿈속에서 볼 법한 배경으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보송보송 마른 빨래를 보며 추억에 잠기는 사람도, 일상의 힘을 찾는 사람도 있다. 상쾌한 기분까지 덤으로 느껴보자.


▲ YTN 아트스퀘어 심성희 초대전 (9.1~9.30)


심성희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에코락갤러리 홈페이지 에코락갤러리 (ecorockgallery.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에코캐피탈의 '무이자할부 금융서비스(최대 60개월)'을 통해 소장할 수 있습니다.


▼ 다음은 심성희 작가와의 일문일답


- YTN과 인터뷰하는 심성희 작가 -


Q. 건축을 전공하셨다고요. 순수 회화를 그린 건 언제부터인가요?


어렸을 때 꿈이 화가였어요. 근데 그림을 그리면 굶어 죽는다, 부모님이 뒷바라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 시대에 살다 보니, 그림 주변에서 계속 맴돌았던 것 같아요. 그림이랑 비슷한 걸 찾다가 건축 설계, 공간 디자인을 공부하게 됐죠. 저는 건축 프로젝트를 하며 바쁜 와중에도 가만 보면 스케치를 하고 있더라고요. 창문을 그리고, 빨래를 그리고... 연필을 쥐는 직업 덕분에 틈틈이 드로잉을 놓지 않았어요.


서른을 넘기면서 주변 사람들한테 선언을 했어요. ‘나는 49세까지만 일을 하고 은퇴한다. 그 이후에는 그림을 그리며 제2의 삶을 살 거야’라고. 무슨 배짱인지 이런 얘기를 하고 다녔어요. 그 약속을 지키려 하다 보니, 저를 다그쳐가며 일을 정말 열심히 했죠.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니 은퇴를 당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40대 중반에 결국 디자인 일을 본업에서 내려놓게 됐어요.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린 지 이제 7년 가까이 됐는데요.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요즘 이 순간순간에 설레며 감사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기회의 시간 [Kairos Time], 162.2x112.1cm, Oil on canvas, 2021


Q. 빨래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빨래가 철학적으로 ‘정화’, ‘카타르시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빨래를 하는 행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지만, 새하얗게 널려 있는 빨래, 햇볕에 바싹 잘 말린 빨래를 보기만 해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그래요.


또, 마당에 빨래가 널려 있으면, 사람을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그 집에 누가 사는지 상상할 수 있잖아요. 샬랄라 원피스가 널려 있으면 저 집에 멋쟁이 아가씨가 사는구나, 천 기저귀가 널려 있으면 저 집에 갓난 아기가 있구나. 이렇게 사람의 흔적이나 삶의 채취를 따뜻하게 담는 게 좋아서 '빨래'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립니다.


▲ 낭만의 무늬, 116.8x91cm, Oil on canvas, 2022


Q. 빨래가 널린 풍경 뒤에 건축물을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배경은 어떻게 구상하시나요.

제게 익숙한 것이 건축이고, 공간입니다. 건축물, 입체적 공간이 제 그림 안에 들어오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저 다운 거죠. 그림 속 배경은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에 이미지를 더해 재구성하거나 스토리를 넣기도 했고요. 상상 속의 풍경이나 장소도 많습니다.

오랜 기간 건축과 공간 디자인을 하면서 건축법으로 제한받거나, 유지 관리, 내구성의 문제로 실현할 수 없었던 요소를 그림에 많이 표현했습니다. 난색 계열의 컬러, 벽돌 건물 같은 로망이 폭발해서 나오더라고요. 삼각형 모양의 박공 지붕이나 판타지 요소를 담은 창문, 분홍빛 하늘 등을 표현해 동화스럽게 그려내기도 했죠. 편안한 분위기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 억눌렸던 것들을 그림 속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 자몽 [紫夢], 162.2x112.1cm, Oil on canvas, 2022


Q. 작품에 담긴 스토리나 상상이 궁금합니다.


'자몽(紫夢)'이라는 작품은 말 그대로 보라색 꿈을 뜻해요. 보라색 꿈으로 물든다,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가 밤이 되면 잠을 자잖아요. 누군가는 밤에 깨어서 '난 아티스트가 될 거야', 이런 찬란한 꿈을 꾸기도 하죠. 그런 꿈과 이상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사이에', '행성간의'라는 작품의 배경은 우주입니다. 우리가 달을 탐험하는 욕망 등 무언가를 쫓아가고 있지만, 사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두려움, 막막함, 도전을 담고 있습니다.

그 밖에 하얀 빨래, 하늘에 날리는 빨래는 자유의 표상, 숲이나 외딴곳에 널린 빨래는 외로움, 그리움 혹은 힐링을 나타냈습니다. 도심 속에서 그려진 빨래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고요. '감정 빨래'라고 표현하는데 다양한 표정의 빨래를 통해 내면의 감정을 녹여내고, 감상자의 공감을 이끌고자 합니다.

사이에 [Between], 116.8x91cm, Oil on canvas, 2020


Q. 제작 방식이 궁금합니다. 특별한 표현 기법이 있다면?


제 그림을 멀리서 보면 정교해 보이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되게 거칠어요.


주제를 강조하는 부분에 주로 부피나 밀도, 두께감을 줍니다. 물감을 한 번 바르고 완전히 말랐을 때, 또 물감을 바르고 마르기를 여러 번 반복합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물감을 켜켜이 쌓아서 거친 질감으로 대상의 생동감을 표현합니다. 반대로 우주 혹은 비물질적 영역은 물감이 젖어있을 때 붓으로 문지르고 비비는 기법으로 매끈하게 표현해,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섬세한데 거친, 양면적인 표현이 특징입니다.


행성간의 [Interstellar], 116.8x91cm, Oil on canvas, 2020


Q. 관객들에게 작품을 관람하는 팁을 준다면?


제 그림을 보시면 대체로 정확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정면 구도'예요. 반듯한 정면 구도는 타자를 응시하는 느낌입니다. 정면 구도를 통해, 내가 그림을 보고 있지만 그림 속의 누군가도 나를 관람자로 응시하고 있다는 포인트를 두었습니다. 내가 그림 속의 타자를 바라보고, 그림 안에서도 나를 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의아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그림이나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과 대화를 하며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데요.(웃음) 관람자들도 그림 속의 타자의 시선을 느끼며 상호작용을 즐겨보시면 색다른 체험이 될 것 같습니다.


또, 캔버스 너머 보이는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담벼락 뒤에는 무엇이 있을지, 관람자에게 궁금증을 일으키도록 의도적인 장치를 심어 뒀습니다. 그림 안에서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Q. 앞으로의 작업 계획, 꿈이 있다면?


싱가포르 전시에 초대가 돼서 하반기에 첫 해외 전시를 열게 됐어요. 이 전시를 기반으로 내년에는 해외에서 개인전을 해보고 싶은데요. 공간 디자인을 했던 경험을 녹여 공간과 설치, 회화가 섞인 기획전을 열고 싶다는 포부가 있습니다.


꿈은 작가가 된 것 자체로 이미 이룬 것 같아요. 지금 나이가 오십이란 말이에요. 이 나이에 설렐 수 있다는 것, 이런 감정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 작업을 하면서 다양한 감정과 마주하고, 새로운 상상과 공상에 몰입해 마음껏 즐기고 있어요. 혼자 실실 되면서 이렇게 좋을 수도 있구나 싶죠.


심성희 작가라고 하면 ‘빨래 그림’, ‘따뜻하다’, ‘기분 좋아’ 이런 심플한 단어들이 연이어 나올 수 있도록, 대중에게 친숙한 작가가 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빨래가 ‘정화’, ‘카타르시스’의 의미를 가진 것처럼, 제 그림이 관객들에게 편안한 휴식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