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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누구를 위한 ‘킹메이커’ 저널리즘인가?
2022-04-03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누구를 위한 ‘킹메이커’ 저널리즘인가?

- 영화 ‘킹메이커 2’를 기대한다면

▲ (왼쪽) 영화 '킹메이커', 한국, 2022 / 감독 : 변성현, 출연 : 설경구, 이선균 등

(오른쪽) 영화 '킹메이커(원제 : The Ides of March)', 미국, 2012 / 감독: 조지 클루니, 출연 : 라이언 고슬링, 조지 클루니 등


“대통령은 누가 만드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봉이 미루고 미뤄졌던 한국 영화 ‘킹메이커(kingmaker)’가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인 3월 9일을 앞두고 개봉되자, 할리우드의 2011년 작품 ‘킹메이커’와 곧잘 비교되었다. 국내 개봉 당시 영화 제목이 같은 것은 물론이고 선거판을 다루고 있어 충분히 비교될만했다. 특히 대선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더구나 실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여러모로 다른 면도 많았다.


할리우드판 ‘킹메이커’는 원래 제목이 따로 있다. 원제인 ‘The Ides of March’는 3월 15일을 말한다. 기원 전 로마의 정치가 줄리어스 시저가 정적들에게 살해당한 날을 뜻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줄리어스 시저>에서 보면 시저에게 점쟁이가 “3월 15일을 조심하라(Beware The Ides Of March)”라고 알려준 데서 연원한다. 실제로 그날 시저는 칼에 찔려 목숨을 잃는다. 그것도 다름 아닌 사촌에게 살해됐다. 그냥 정적이 아니라 사촌에게 피살됐으니 이는 배신 가운데 배신이라고 할 만했다. 그렇게 할리우드판 조지 클루니의 ‘킹메이커’는 냉혹한 배신의 선거 과정을 다룬다.


한편 설경구, 이선균의 주연의 ‘킹메이커(감독 변성현)’는 배신보다는 선거 전략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조지 클루니가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킹메이커’는 거의 말로 선거를 치른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는 선거운동을 둘러싼 정치가 아니라 구체적인 선거 전략이 빛을 발한다. 다만 말 그대로 선거를 이기기 위해 별짓을 다 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대결 구도가 선명하다. 물론 그 구도 때문에 결국 배신까지 이르게 되니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결국, 대선에서도 진다. 하지만 조지 클루니와 라이언 고슬링의 선거는 선거 결과만큼은 고무적이다.


▲ 영화 '킹메이커(원제 : The Ides of March)' 스틸컷


그런데 저널리즘 차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에는 저널리스트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널리스트뿐만 아니라 신문이나 방송 매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간혹 몇 가지 선거 소식을 전할 뿐이다. 하지만 조지 클루니의 ‘킹메이커’에는 저널리스트가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등장한다. 거의 공기와 같이 작용한다. 바로 대표주자가 ‘타임’지의 베테랑 정치부 기자 ‘아이다(마리사 토메이)’다. 그가 없었다면 이 영화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마이크 모리스(조지 클루니 역) 주지사는 승승장구했다. 백전노장의 선거캠프 본부장 폴 자라(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역)와 유능한 선거 전략가 스티븐 마이어스(라이언 고슬링 역)가 보좌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티븐은 대선을 앞두고 그야말로 혁혁한 공을 세워 킹메이커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적어도 한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말이다. 그 사람은 상대 후보 진영의 본부장 톰 더피(폴 지아마티 역)였다. 그는 만나기 싫다는 데도 거의 조르다시피 해서 스티븐을 불러낸다. 우격다짐으로 짧게 만든 자리에서 톰 더피는 스티븐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걸고 영입을 제안한다.


하지만, 스티븐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선거운동 본부장 폴 자라에게 뒤늦게 말한다. 자신을 영입하려는 상대 진영에 대해 대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그런데 곧 연락해온 사람은 바로 ‘타임’지의 기자 ‘아이다’(마리사 토메이)였다. 상대진영 톰 더피 본부장과 만난 사실을 알고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라고 강박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보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스티븐은 분명 소스를 누가 기자에게 알려줬는지 의심을 하는데, 자기를 불러낸 상대 진영의 톰 더피라고 생각하고 그를 찾아 따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을 언론에 알린들 자기에게 이로울 것이 없었다. 톰 더피는 자기는 아니며 그러한 사실을 누구에게 알린 것이냐고 되묻는다. 스티븐은 상관인 폴 자라 본부장에게만 말했다고 했다. 그러자 톰 더피는 그가 결벽주의자이기 때문에 상대 진영의 관계자인 자기를 만난 것 자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스티븐을 가만히 캠프 진영에 놓아두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 영화 '킹메이커(원제 : The Ides of March)' 스틸컷


더구나 톰 더피는 언론에 곧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질 것을 알게 되자 발을 재빨리 뺀다. 불과 얼마 전까지 영입을 못 해 안달하던 태도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언론에 보도되면 스티븐이 잘릴 것이고, 잘린 선거 참모를 자기는 받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은 능력 있는 참모가 속한 상대 진영을 무너뜨리는 것이 선거 전략이라고까지 말한다. 아뿔싸, 스티븐은 완전히 낙동강 오리 알 신세에 이른다. 스티븐이 급히 다시 폴 자라 본부장을 만나 물어보니 그는 자신이 ‘타임’지 기자에게 소스를 줬다고 털어놓는다. 스티븐은 상대 진영에 갈 생각이 없다고 거절했다고 항변했지만, 폴 자라는 상대 진영 관계자를 만난 것 자체가 배신이라고 차갑게 말한다. 오랫동안 선거캠프 일해 온 자기 사전에는 그 같은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못 박는다. 결국, 상대 진영 관계자를 잠깐 만났다는 이유로 킹메이커 소리를 들었던 천재적 선거 전략가가 캠프에서 잘리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타임’지 기자는 스티븐이 캠프에서 쫓겨나고 모리스 주지서는 선거에서 매우 불리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기사를 내보낸다.


하지만, 그다음 날 언론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해고자는 스티븐이 아니라 폴 자라였다. 놀라운 반전이었으며 이 영화의 결정적인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다음날 아이다 기자는 스티븐을 찾아가 자신이 망신을 당했다면서 주지사의 어떤 약점을 잡았는지 말하라고 한다. 진실이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고 단지 사실만 전달하는 행위가 위험한 것인지 전혀 생각 없는 듯했다. 이에 스티븐은 오히려 아이다를 조롱하는 듯한 농담을 건네면서 방송사 라이브 인터뷰 공간으로 들어간다. 배신이 난무한다는 선거판에서 그는 주지사의 약점을 언론에 폭로하지 않는다. 물론 그가 선한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그것이 어느새 자신의 존재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기반이 흔들릴 때 모리스 주지사가 인턴 직원과 불륜을 저질렀던 사실을 폭로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타임지 기자를 물리쳤지만, 언제든 자신에게 필요하다면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이 영화에서는 신문만이 아니라 방송 매체에 비치는 정치인의 모습이 등장하고 이를 활용하는 미디어 전략이 당연히 노출된다. 하지만, 한국 영화 ‘킹메이커(2022)’에는 이런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어떤 전문가는 한국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론의 역할을 못 하는 것은 조지 클루니의 ‘킹메이커’ 속 ‘타임’ 지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이 선거 과정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하려고 했던 사례는 현대사에서 얼마든지 있지만, 한국 영화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영화 ‘내부자들(감독 우민호, 2015)’ 정도가 있는데 신문 논설위원 한 명에 직접 선거와는 관련이 없다.


3월 9일,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고 당선인이 찾아 챙긴 곳 가운데 하나는 인수위 사무실 앞 프레스 다방이라는 곳이었다. ‘얼마나 자냐, 혼밥 안 하냐’면서 ‘용산 청사서 김치찌개 끓여주겠다.’라는 말도 남겼다. “제 집무실 문은 언제든 열려있다”라는 말도 의미심장했다. 또한, 당선 직후부터 주요 언론사 보도국장과 편집국장 등 국장단과 식사를 하면서 식사 정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검언 유착을 우려하는 것이 기우가 아닌 대한민국의 권력 현실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다시 한번 ‘킹메이커’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이유도 되겠다. 언제쯤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을지 그 기대감이 유예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