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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당당한 살인자에 주눅들 수 없는 저널리스트 - 영화 ‘성스러운 거미’ 리뷰 (※스포일러 주의)
2023-04-05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당당한 살인자에 주눅들 수 없는 저널리스트


영화 성스러운 거미│2023

감독 : 알리 아바시, 주연 :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 메흐디 바제스타니


▲ 영화 '성스러운 거미' 포스터


라히미(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役)가 호텔 프런트에서 예약한 방을 직원에게 요구한다. 하지만 직원은 난색을 보인다. 곧 미혼인지 기혼인지 묻는다. 라히미는 미혼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해당 직원이 옆에 있는 다른 직원에게 묻더니 다시 말한다. 뭔가 착오가 있어서 오류가 발생했다고 한다. 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라히미는 “이러려고 하지 않았는데” 하면서 신분증을 내민다. 자신이 기자라고 밝히자 다시 난색을 보이는 직원은 나이가 좀 더 많은 다른 직원과 다시 가볍게 논의한 뒤 이번에는 방이 마련되었다고 알린다. 라히미는 이렇게 빨리 방이 마련되느냐고 조금 조롱하듯 묻는다. 그러자 직원은 물론이라고 대답한다. 왜 있는 방을 없다고 했는지는 마지막에 직원이 덧붙인 말로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히잡을 제대로 써서 머리를 가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이기 때문에 엄연히 예약된 방을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라히미가 이런 차별을 겪는 것은 특히 호텔이 있는 곳이 종교 최대 도시인 마슈하드이기 때문이었다. 인구 337만 명의 마슈하드(Mashhad)는 순교자의 땅이라는 이름으로 이란 동부 호라산주의 중심 도시이며, 이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테헤란에서 동쪽으로 850km 떨어져 있는데 특히 시아파 세계에서 가장 성스러운 도시 중의 하나이다. 종교의 성지라는 이름으로 순교자의 땅이라며 여성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있었다.


▲ 영화 '성스러운 거미' 스틸컷


여성에게 차별이 심한 마슈하드에 라히미가 온 이유는 연쇄살인 사건 때문이었다. 무려 여성 16명이 연이어 살해당했는데도 경찰 수사는 별 진전이 없고, 언론 보도조차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히미가 마슈하드에 와서 현지 범죄 전문 기자를 통해 놀라운 사실 알게 된다. 범인이 범행 후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와 시체는 어디 있으며 자신이 한 짓이라고 명확하게 밝힌다는 것에 경악하고 만다. 상황이 이런데도 경찰은 매우 수동적으로 움직인다. 기본적인 수사 자료조차도 공유하지 않는다. 더구나 경찰국장은 라히미를 기자가 아니라 여성으로 대한다. 그것도 하나의 성적 도구화 요구를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그들에게 저널리스트로서 일말의 협조를 기대한 라히미는 끊임없이 전 직장의 추문 의혹에 시달리기도 한다.


한편, 언론과 경찰의 소극적인 태도는 곧 그 이유가 짐작된다. 영화는 범인을 초기에 공개해 버린다. 범인의 서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은 살인범의 범죄 행위와 언론, 경찰의 태도가 같이 맞물려 있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구성이다. 그가 신문에 전화를 거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이 정당한 일을 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사회적 정화가 이뤄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살인이 정화라니 도대체 그 여성들이 누구이기 때문일까? 그 여성들은 거리의 성매매 종사자였다. 마약 중독자였던 그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처지에 있었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유가족들은 수사는 물론 범인 체포 요구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 영화 '성스러운 거미' 스틸컷


한편 범인 사이드(메흐디 바제스타니 役)는 평범한 가장으로 보인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고 있고 아내도 젊다. 군인으로 오랫동안 복무한 그는 사욕을 채우지 않고 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로 보인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신이 국가를 위해 다른 이바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사실은 그런 생각이 연쇄살인의 동기가 되기 때문에 감독은 일찌감치 그의 얼굴과 일상 서사를 공개한다. 낮에는 건축일을 하고 저녁에는 가장으로서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하는 그는 심야에 살인범으로 나섰다. 친구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지만, 밤만 되면 마치 성전에 나서는 전사같이 군다. 그는 살인 행각을 계속하고 어김없이 신문사에 전화를 건다. 심지어 경찰이 출동한 시체 유기 현장에 같이 나타나서 상황을 파악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 날 꼭 신문에 보도되는 내용을 점검한다.


하지만, 라히미의 눈에 희생자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단지 성매매에 나섰다고 해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연쇄살인범은 성을 매수한 자들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희생자들은 하나같이 남성들에게 폭행, 위협, 갈취를 당하며 어려운 삶을 버텨내고 있었고 누군가의 엄마였고 아내였으며, 딸이었다. 심지어 라히미 자신이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여성조차 연쇄 살인범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더구나 배가 고파 비참하게도 사과 한 입 먹다가 죽는다.


▲ 영화 '성스러운 거미' 스틸컷


이런 상황을 라히미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범죄 전문 기자의 만류에도 직접 살인자를 유인하기 위해 나선다. 마침내 살인범을 만나게 된 상황, 성매매 노동자인 듯 위장하고 사이드의 집으로 따라 들어가 녹음을 시도하지만, 뒤를 봐주던 범죄 전문 기자도 어디 있는지 모를 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사실 이 대목에서 남자 기자의 개입으로 목숨을 구한다면, 이 영화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었다. 어쨌든 스스로 기지를 발휘해 라히미는 탈출한다. 라히미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경찰도 그를 체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은 여론이었다. 오히려 시위대가 연쇄살인범을 옹호하고 무죄를 주장했다. 그들은 법정에서도 판사를 조롱하고 야유를 보낸다. 라히미는 자신이 취재 기자로 어떻게 범인을 잡는데 기여했는지 숨겨야 할 판이었다. 여기에 살인범도 고무되고 자신이 무죄 방면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더구나 그의 가족들이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일이 벌어진다. 아내조차 피해자들은 당해도 마땅하다고 말한다. 자기 아들에게는 ‘부정한 여자들을 처단했다.’라고 말한다. 아들에게 시장 상인은 훌륭한 일을 했기 때문에 기죽지 말라고 사과를 얹어 주기도 하니 아들은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 영화 '성스러운 거미' 스틸컷


이런 상황에서 라히미는 재판 결과에 대해서 불안해한다. 비록 유죄가 선고되어도 범인에게 판결문대로 하지 않으리라 의심한다. 사법 시스템이 여론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록 그 예측이 빗나간 점은 바람직했지만, 문제는 사법 체계만이 아니었다. 이는 문화적인 요인이었다. 영화는 라히미가 자신이 촬영한 카메라 동영상을 보며 마친다. 그 마지막 장면은 사형 당한 사이드의 아들이 아빠가 저지른 살해 방법을 그대로 재연하는 내용이었다. 자랑스럽게 구는 아들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도 얼마든지 연쇄살인이 사회 정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연쇄살인범을 옹호하는 이들의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세력이 같이 공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실제 사실에 기반을 둔 작품이지만, 저널리스트 라히미는 가공의 인물이다.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킨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나는 여성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언론의 역할에 관해 묻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라히미가 고군분투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이렇게 혼자 위험에 자신을 노출하며, 취재하는 일이 더이상 없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범죄자가 자신의 행적을 다 노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작은 저널리즘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외면 되는 현실은 비단 이란만은 아니다. 문화적 가치의 옹호 때문에 반문화적인 범죄들이 횡행하는 일들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는 말하고 있다. 살인자의 아들이 다시 연쇄살인을 저질러도 법정은 다시 사형을 내릴 것이라고 말이다. 적어도 라히미 같은 언론인의 노력이 있는 한 말이다. 다만 그것이 너무 힘든 것은 우리의 문화적 인습이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화적 역설은 한국에서도 이제 흔들려야 한다.


▲ 영화 '성스러운 거미'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