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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토리] 풍력발전 두 얼굴, 코로나와 방구석 기획 - 홍성욱 기자
2023-05-17

■ 전국부 춘천지국 홍성욱 기자


*2023년 1분기 '자랑스러운 YTN인상' 특종상 <은상>

[친환경 에너지... 풍력발전 ‘두 얼굴’] 연속 보도

- 강원취재본부 지환, 춘천지국 홍성욱, 홍도영, 박진우


[취재후기] 풍력발전 두 얼굴, 코로나와 방구석 기획


▲ 홍성욱 기자 (YTN 뉴스화면 캡처)


■ "바람아! 멈추어다오"


바람이 멈추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형 풍력발전기 앞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주민들입니다.


취재는 제보로 시작됩니다.

한적한 산촌, 은퇴 후 귀촌을 꿈꾸며 마련한 전원주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마을 뒷산에 풍력발전 단지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높이 100m 넘는 풍력발전기 수십 대가 세워지는데 주민설명회는 구경조차 못 했습니다. 동의를 구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평창으로 달려가 취재를 마쳤습니다.


▲ '풍력발전 두 얼굴'... 관련법은 '거꾸로' (YTN 뉴스화면 캡처)


■ 코로나19 확진, 그리고 격리


이튿날 눈뜨니 목이 따갑습니다. 함께 취재 간 촬영기자 도영 선배의 카톡이 눈에 띕니다. "코로나에 감염된 것 같아…."

회사 대신 병원으로 향했고, 그렇게 2번째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증상은 심하지 않았습니다. 연차 안 쓰고 쉬니 참 좋았습니다.


격리 나흘째, 지루한 와중에 기자 사명감이 조금은 남아있었나 봅니다. 풍력발전 인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 하소연을 시작합니다. 풍력발전 단지가 들어서길 자신도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문제는 사업자가 환경부와 산자부의 인허가를 이미 받았기 때문에 반려할 명분이 없다는 겁니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습니다. 격리 중이라 시간은 많았습니다. 다시 전화를 돌렸습니다.


■ 허점투성이, 풍력발전 사업


가장 먼저 풍력발전 사업과 관련한 제도의 허점을 확인했습니다.

핵심은 전기사업법 7조 5항입니다.

'사업자는 사전 고지를 통해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칠 것.'


주민 찬반 동의도 필요 없습니다. 아무 때나 조용히 사업 설명회만 열면 그만입니다. 주거지역에서 1.5km 이상 떨어져 풍력발전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환경부 권고는 있으나 마나였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미 설치됐거나, 설치가 예정된 풍력발전 단지는 전국에 100여 곳.

격리는 곧 해제됩니다. 다시 현장으로 갈 차례입니다.


▲ '풍력발전 두 얼굴'... 관련법은 '거꾸로' (YTN 뉴스화면 캡처)


■ 전국 출장 시작!


격리가 끝나고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전남 무안과 영광이었습니다. 처음 가 본 동네였습니다. 어촌 마을에 들어선 풍력발전기 수십 대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과 가까워도 너무 가깝습니다. 길이 70m 풍력발전기 날개가 돌아가며 윙윙거리며 내뿜는 저주파 소음. 머리는 멍하고, 알 수 없는 불쾌함이 돋아났습니다.


민가와 1.5km 이상 떨어지라는 환경부 권고는 현장에선 무용지물이었습니다. 풍력발전기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었지만, 사업자는 마을 이장들을 포섭해 보상금을 쥐여주고 입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대신 엉뚱한 곳에 사는 주민들을 모아 사업 설명회를 열고, 버젓이 산자부에 사업 승인을 받았습니다. 방송에도 사용했지만, 풍력발전기와 불과 3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사는 한 어르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야 곧 죽겠지만, 이제 아이들이 여기 살러 올 텐데…. 갑갑합니다."


관련법은 거꾸로입니다. 무엇보다 풍력발전이 친환경 에너지로 포장됐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발의된 '재생에너지 개발 이용 보급 촉진법 개정안'이 대표적입니다. 법안은 과도한 입지규제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며 새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주거지역으로부터 500m.

그나마 있던 정부 권고안을 1km 더 줄였는데, 어디에도 저주파 소음 대책은 없습니다.


▲ 1.5㎞의 '권고'... 소음 피해는 주민 몫 (YTN 뉴스화면 캡처)


■ 설치 과정 환경 훼손은 당연


대부분 풍력발전기는 산꼭대기 능선에 설치됩니다. 해풍이 부는 어촌 마을 못지않게, 산 정상에서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입니다. 호남에 이어 영남으로 달려갔습니다. 해발 1,000m 경북 봉화 오미산 정상은 풍력발전기 설치가 한창이었습니다. 현장 취재에서 길이 70m가 넘는 풍력발전기 날개를 산 정상으로 올리는 작업을 촬영했습니다. 발전기 날개가 거대한 중장비에 실려 산을 올랐습니다. 없던 길을 만들기 위해 정상까지 나무를 베고, 산을 헤집었습니다. 천연기념물 산양부터 보호종인 삵과 참매, 수달을 비롯한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필요한 대로 산을 깎는 바람에 집중호우라도 쏟아지면 산사태가 걱정됩니다. 산림 훼손이 심각한데 사업이 가능한 이유. 발전사업자가 자신들이 원하는 업체에 돈을 주고 환경영향평가를 의뢰한 덕분입니다.


▲ '풍력발전 두 얼굴'... 관련법은 '거꾸로' (YTN 뉴스화면 캡처)


■ 두 얼굴의 풍력발전


풍력발전은 신재생에너지로 불립니다. 전력이나 연료 없이 발전할 수 있고, 온실가스 배출도 없습니다. 탄소 중립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에 꼭 필요한 시설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엔 누군가는 소음으로, 어딘가는 환경 훼손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친환경 에너지 풍력발전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소중한 첫 제보를 전해준 방병삼 선배부터 허술한 취재 계획에도 시간과 기회를 주신 전국부 송태엽 선배와 황보선 부장. 강원도는 물론 전남부터 경북까지 전국 곳곳을 누비며 생생한 현장을 화면에 담은 도영 선배와 진우. 그리고 운전 진형이, 오디오 영진이. 죽어가는 기사에 숨을 불어넣어 준 환 선배까지. 모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충분히 쉬고 고민할 시간을 갖게 해준 코로나19에 전합니다.

고맙다. 근데 이제는 '의무 격리' 아니라 '격리 권고'란다.

기사에도 썼지만 '권고'는 영 별로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 뉴스 취재 현장 (강원도 평창 대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