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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토리] 시청자 대신 불편을 감수하는 일 - 최기성 기자
2023-10-30

YTN 보도국 최기성 기자


[수상기] 시청자 대신 불편을 감수하는 일

* 2023년 3분기 '자랑스러운 YTN인상' 특종상 금상

<현대·기아차 주행 중 동력 상실> 연속 단독 보도


▲ [단독] 현대차기아 13만 6천대 무상 수리 어떻게 이뤄지나 (YTN 뉴스화면 캡처)


6월 중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아이오닉5 ‘주행 중 동력 상실’ 결함 신고를 접수해 조사에 착수했다. 운전자 30여 명은 도로를 달리다 시동이 꺼지거나 동력이 감소하는 경험을 했다고 신고했다. 외신 보도로 소식을 접하고 한국에는 비슷한 일이 없는지 궁금했다. 현대차·기아에 공식 질문했고 “국내에는 없다”라는 답을 들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팔리는 아이오닉5는 모두 한국 공장에서 만든다. 미국에서만 문제가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주행 중 동력 상실’은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 결함이다. 해명이 사실인지 따져보자는 취지로 취재에 들어갔다.


▲ [단독] 현대차기아 13만 6천대 무상 수리 어떻게 이뤄지나 (YTN 뉴스화면 캡처)


국토교통부와 교통안전공단 등 교통 당국 관계자 여러 명을 접촉했다. 제보나 의원실 도움 없이 혼자 취재했다. 정제된 정보를 발굴해 입수하기까지 보름이 걸렸다. 자료를 제시한 뒤에야 현대차·기아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자체 취합한 건수는 비공개했다. 첫 보도 사흘 만에 6개 차종, 13만 6천 대를 무상 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YTN이 보도한 차종에 대해 국토부는 조사에 들어갔고 시민단체는 현대차·기아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


추가 취재를 진행했고, EV9 전기차 인수 이틀 만에 ‘주행 중 동력 상실’을 겪었다는 운전자와 연락이 닿았다. EV9은 기아가 6월에 출시한 신차다. 도로를 달리다 차가 갑자기 멈췄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고속도로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기도 무섭다고 운전자는 말했다. EV9은 무상 수리 대상에 포함된 차종이 아니었다. 사례를 제시하자 현대차·기아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이번에도 자체 집계 건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앞서 보도한 사례와 달리 차가 멈추는 이유를 추정하지 못했다. 한 대에 7~8천만 원짜리 차량이 원인을 모르는 결함을 안고 팔리고 있었다. 보도 뒤 국토부는 현대차·기아에 관련 자료를 요구하고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 '도로 위 멈춤' 기아 EV9 전량 리콜 시작..."제작 결함" (YTN 뉴스화면 캡처)


“동력이 감소해도 경고등이나 경고음으로 여러 차례 알리고 30분 동안 저속 주행할 수 있어 위험한 상황은 오지 않는다”라는 현대차·기아 해명이 사실인지도 검증했다. EV9 동력 상실 당시 계기판 사진을 입수했다. 배터리가 76% 남아 있었지만, 시동이 꺼지지도 켜지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위험하지 않다”라는 현대차·기아 해명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보도했다. 현대차·기아는 결국 EV9 전량인 8,300여 대를 리콜했다. EV9은 7월에 1,682대가 팔렸고 YTN 보도가 나간 8월에는 판매량이 501대로 줄었다. 사전 예약 물량은 10,000대였지만, 다 팔리지 않았다.


▲ '도로 위 멈춤' 기아 EV9 전량 리콜 시작..."제작 결함" (YTN 뉴스화면 캡처)


소비자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결함을 밝히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실을 발굴해 보도하지 않았다면 아직 이 내용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상 수리나 리콜이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국내 완성차 판매 1위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이번 보도로 드러났다는 시청자 반응이 많았다.


사회부 소속이던 2017년과 2018년 기업 갑질 보도로 상 받은 적이 있다. 이후 정치부와 편집부에 있을 때는 기업 취재할 일이 없었다. 기업을 취재한 건 오랜만이다. 규모가 큰 회사를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기사화 과정에서 쳐내야 할 장애 요소가 많다. 이번에도 여러 일을 겪었다.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하고, 불편한 상황을 겪고,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기자가 하는 일은 시청자 대신 불편을 감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사회에 도움 되는 기사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