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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토리] “사람이 하는 일” - 황보혜경 기자
2023-10-30

YTN 보도국 사회부 황보혜경 기자


[수상기] "사람이 하는 일"

* 2023년 3분기 '자랑스러운 YTN인상' 특종상 동상

<지역농협 직원 횡령 사건> 연속 보도


- 작년 6월 보도. 경기 광주시 한 농협 지점 앞 (황보혜경 기자) -


국내 최대 협동조합인 농협은 어느 지역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서민 금융기관이다. 장기근속 직원들이 많아 내부 속사정에 훤하고, 주민들과도 가깝게 지낸다. 그만큼 직원 비리를 쉽게 알아차리기도, 의심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지난해 6월 경기 광주시 오포농협 직원이 시재 40억 원을 횡령한 사건을 처음 보도했다. 그 뒤로도 지역단위 농협에서 벌어진 직원 횡령을 잇따라 보도했다. 농협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 일부 감독 권한이 있는 금융감독원의 제도 개선 움직임으로 이어지며,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는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 [단독] "2억여 원 도박으로 탕진"...반복되는 지역농협 횡령 왜 못 막나? (YTN 뉴스화면 캡처)


다시 제보가 온 건 꼬박 1년 만이었다. 이번에는 서울 구로구 지역농협의 자동화기기 담당 직원이 ATM 돈통에 손을 댔다는 내용이었다. 자동화기기 현금을 관리하는 직원은 지점에서도 1~2명에 불과하다. 근속 기간만 10년에 달하는 담당 직원이 훔친 돈은 석 달 동안 무려 1억 2천만 원. 직원은 이 돈으로 주식 선물거래를 했다고 털어놨다.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서울 금천구에 있는 지역농협에서도 직원이 2억 3천여만 원을 횡령한 뒤 도박으로 탕진했다. 해당 지점 보유 현금의 30%가 넘는 규모였다. 그런데도 지점 측은 직원이 경찰에 자수한 뒤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 [단독] "2억여 원 도박으로 탕진"...반복되는 지역농협 횡령 왜 못 막나? (YTN 뉴스화면 캡처)


언제든 잡힐 범행을 대담하게 저지른 직원들도 문제지만, 농협의 구조적인 문제도 컸다. 두 지점에서는 실제 보유현금과 장부상 금액이 일치하는지 매일 확인하는 '시재 검사'를 소홀히 했던 사실이 취재 결과 드러났다. 한 달 간격으로 지점장이 실시하는 내부 감사도 대규모 횡령을 적발하진 못했다.


지난해 농협중앙회는 “직원이 조금씩 여러 번에 걸쳐 횡령을 저지를 경우, 정상적인 거래로 인식해 걸러지지 않았다”며 전산 감사의 한계를 인정했다. 이에 불시 감사 횟수를 더욱 늘리고 시재 검사 담당자의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대책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던 거다.


▲ 횡령 적발까지 '평균 39개월'..."농협 내부 통제 허점" (YTN 뉴스화면 캡처)


“사람이 작정하고 저지른 일을 어떻게 막느냐?"

잦은 통화로 이제 친분이 생길 지경이 된 농협중앙회 담당자가 한 말이다. “지역 농축협이 전국에 4천7백여 곳인데, 일일이 감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안일한 인식 때문에 피해는 번번이 지역 농민 그리고 서민들에게 돌아갔다.


지금도 농협을 비롯한 상호금융업에서는 대규모 횡령 사고가 터진 뒤 취재진에게 비슷한 말들을 반복하고 있을지 모른다. 사람이 한 일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일이라 막아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가 통하는 것만이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