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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스토리] 왜 그들은 억울한 성범죄 피해자를 범죄자로 만들까?
2023-07-07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왜 그들은 억울한 성범죄 피해자를 범죄자로 만들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피해자/용의자 (Victim/Suspect)│2023

감독 : 낸시 슈와르츠만


▲ 다큐멘터리 '피해자/용의자' 포스터


스릴러의 거장,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 2014)’에서 닉(벤 애플렉 役)은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 役)의 과거를 알고 놀라게 된다. 에이미는 전 남자친구를 사이코패스 성폭행범으로 조작해 몰아간 전력이 있었다. 만약 에이미 같은 사람이 경찰서에 성폭행 범죄를 신고한다면 믿지 않을 법하다. 에이미의 캐릭터를 생각하면 허위 신고로 무고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많을듯싶다. 영화 ‘브라이언 뱅크스(Brian Banks, 2002)’도 이런 성폭행 무고, 즉 허위의 성폭행 고소를 다룬 작품이다. 하지만 두 작품은 다른 점이 있다.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는 같은 이름의 소설이 원작인데 사실에 기초하고 있지 않고, 영화 ‘브라이언 뱅크스(Brian Banks)’는 성폭행 무고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실화를 좀 살펴보면, 2002년 7월 미식축구 장학생을 목표로 할 만큼 전도유망했던 브라이언은 갑자기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다. 브라이언에게는 놀랍게도 고소인이 브라이언과 사랑을 나눈 와네타 깁슨이었다. 자신의 기억에는 성폭행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브라이언과 깁슨 두 사람은 합의로 애무와 키스를 나누었고 성관계를 맺으려 했는데 다만, 주변에 인기척이 있는 바람에 두 사람은 급히 현장을 벗어난 적이 있을 뿐이다. 이런 기억만 있는 브라이언은 와네타 깁슨이 강간죄 심지어 납치죄를 들어 브라이언을 고소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급히 현장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깁슨이 모욕감을 느꼈고 이 때문에 고소를 하게 되었다. 이런 허위 고소로 브라이언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 다큐멘터리 '피해자/용의자' 스틸컷


이런 영화들을 보면 성폭행 무고가 매우 만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면 더욱 그런 생각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흔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의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이점을 저널리스트의 취재를 통한 객관적 사례 분석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피해자/용의자 (Victim/ Suspect, 2023)’다. 강간 피해를 허위로 신고하는 여성들에 대한 소재이므로 ‘나를 찾아줘(Gone Girl)’, ‘브라이언 뱅크스(Brian Banks)’와 공통점이 있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강간을 당한 피해 여성들이 오히려 범죄자로 기소되는 기가 막히는 현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화 제목이 왜 ‘피해자 용의자(Victim/ Suspect)’인지 알 수 있다.


성범죄 사건 취재를 하던 저널리스트 레이첼 드 레온(Rachel de Leon)은 성폭행 무고죄로 처벌을 받는 여성들에게서 특정한 패턴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우선 성폭행 무고죄 가해자가 어린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14세에서 26세 여성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다음으로 묘하게도 경찰서 심문을 받은 뒤 갑자기 신고 철회를 하는 일이 빈번했다. 더구나 신고 철회 후 갑자기 무고죄로 기소되었다. 자신이 범죄자로 기소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면, 경찰 심문 단계에서 신고를 철회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따라서 레이첼은 경찰 수사에 뭔가 문제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의심을 가지고 미국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성폭행 무고죄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4년 동안 260여 건 이상의 개별 사례를 발로 뛰어 대면 조사하고 관련 자료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피해자를 인터뷰하는 것은 물론 가해자의 입장도 들어보려 했으며, 경찰 수사관 출신 전문가에 법률, 심리 전문가 등도 빼놓지 않았다.

▲ 다큐멘터리 '피해자/용의자' 스틸컷


그가 밝힌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대표적으로 성폭행 피해자였지만 오히려 무고죄로 기소된 여성 가운데는 극단적 선택을 한 예도 있는데, 담당 경찰관들은 당당했다. 특히 인터뷰에 응한 현직 담당 경찰관은 자신있게 인터뷰에 응했다가 자신의 잘못을 인터뷰 과정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왜 이런 모순된 현상이 일어날까 싶다. 수사관들에게 업무 과중이라는 근무 환경도 있었지만, 레이첼은 경찰 수사 기법과 메뉴얼의 근본적인 한계도 있다는 점을 파악하게 된다. 담당 수사관들은 성폭행 고소인이 거짓말할 가능성을 전제하고, 거짓 심문을 당연시했다. 예컨대, 허위인지 떠보기 위해 “우리가 확보한 영상 자료에 따르면 당신이 그와 키스를 했다.”라고 고소인 여성들에게 지적한다. 이런 질문의 의도는 단순하면서 치명적이다. 두 사람이 키스하는 사이니까 합의된 성관계로 보인다는 것으로 이런 질문을 받은 성폭행 고소인은 혼란스러워한다.


상황은 여러 가지일 수 있었다. 미처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구나 자신이 술에 취해 기억이 없을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엇비슷한 행위가 키스로 비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영상 자료가 따로 있다니 이렇게 되면 진실의 증명 책임은 더욱 고소인에게 가중된다. 혼란과 부담을 느끼게 되는 순간 수사관은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 아니냐고 질문으로 압박하기 시작한다. 이런 압박이 있고 난 뒤 고소인들은 더욱 심리적 고통에 못 견뎌서 신고를 철회한다. 담당 수사관들은 자신이 맞았음을 확증하고, 사건을 종결한다. 그리고 도리어 고소인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운다. 그들에게 수사관들은 성폭행 무고죄를 적용하는 것이다. 이때서야 성폭행 피해 여성은 상황이 대단히 잘못되었음을 비로소 실감한다.


▲ 다큐멘터리 '피해자/용의자' 스틸컷


이 다큐멘터리에서 저널리스트가 더 주목하고 집중하는 것은 왜 여성들이 신고를 취하하고, 경찰은 성폭행 무고죄를 적용하는가이다. 우선 경찰이 간과하는 점은 성폭행 신고자는 일반 범죄 피해자가 다르다는 점이다. 그들은 엄청난 용기를 내고 신고를 했다. 이 영화에서는 미국에서 성폭행은 1년에 약 46만 건이 발생하지만, 이 중에 신고가 되는 것은 30%에 불과하다고 밝힌다. 그 용기는 무엇보다 경찰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경찰이 거짓 기만술로 다른 영상 자료 운운하고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신뢰는 깨진다. 신뢰 붕괴에 따른 상황이 더 괴로워지므로 그 용기마저 꺾는다. 경찰이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고통은 가중되고 이에 대한 임기응변의 선택, 그것이 바로 신고 철회이다. 거짓 신고한 것으로 몰아가는 수사관에 마지못해 동의하기 시작하다가 결국 신고 철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신고 철회하는 이유는 경찰의 말에 순순히 동의하면 상황이 종료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상황의 종료는 범인의 체포가 아니라 괴로운 심문의 종결이다. 수사관은 이러한 피해자의 심리 상황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에 자긍심을 갖고 피해자를 성폭행 무고죄 용의자로 기소하기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특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들은 이런 수사 심문 과정에서 너무 무력하기에 억울하게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자문했다. 왜 어리고 젊은 여성 여성들이 주로 성폭행 무고죄로 처벌이 되는지 알 수 있다.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에서 아내 에이미 같은 캐릭터는 매우 희소하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이런 무고죄 기소에 대해 경찰들은 나름의 사회적 명분도 내세운다. 추가적인 성폭행 무고를 막으려는 조치라는 것이다. 피해자를 범죄 용의자로 기소하는 것이 혈세로 운영되는 수사 행정력이 낭비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이지만, 자신들의 업무 과중을 막으려는 편의주의 조치로 보인다. 이렇게 규정하는 이유는 특히, 고소 여성들이 용의자로 지목한 이들을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을 때, ‘피해자/용의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수한 상황에 부닥친 억울한 피해자를 오히려 범죄자로 만들고 그들의 삶을 파괴할 때, 오히려 진짜 범죄자들은 더욱 활개를 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무고 행위를 방지하는 조치와 성범죄 수사 미비로 인한 부정적 결과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대한지 명확하다. 이 영화는 자신들이 정당한 수사 기법과 절차로 기소한 사례는 단순히 업무 처리가 아니라 억울한 피해자, 한 사람의 삶을 끝장내는 것임에도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하는데 사법 행정 시스템이 큰 몫을 하고 있음도 강조하고 있다.


▲ 다큐멘터리 '피해자/용의자' 스틸컷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점은 취재 과정에 얻은 자료들이 재판에 영향을 미쳐 무죄 판결을 끌어낸 점이다. 단순히 여론을 조성하는 수준이 아니라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다큐멘터리는 팩트 체크에 충실한, 객관적인 자료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관객에게 말하려는 점 분명하다. 성폭행 사건 46만 건 중에 가해자 처벌은 1%이며, 평생 여성은 3분의 1, 남성도 6분의 1은 성폭행의 피해자가 된다는 것. 무엇보다 성폭행 무고죄에 누구나 연루될 수 있다는 점, 다시 말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며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엔딩 크레딧이 인상적이다. 인터뷰를 거부한 관련자 이름을 기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편할 수 있지만, 성범죄자 체포는 고사하고 피해자를 범죄자로 만들어 그들의 인생을 파탄 내는 것보다 더 불편함을 넘어 고통을 끼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레이첼 드 레온은 “저널리즘은 불편한 것을 말하는 것이죠. 그것이 저널리즘이죠.”라고 했다. 그 말이 뇌리에 계속 맴도는 이유를 알만하다.


▲ 다큐멘터리 '피해자/용의자'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