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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스토리] 목욕 가방 이야기
2020-07-06

 

‘주민 갑질·폭행에 경비원 극단적 선택' 이달의 기자상 수상 후기 – 사회부 안윤학

7월 Y스토리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방송기자협회의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수상한 안윤학 기자가 쓴 글입니다.

  아파트 경비원 연속보도 취재 후기에 ‘목욕 가방’ 제목이 붙으니 다소 뜬금없어 보일 겁니다.  비누, 샴푸, 바디워시, 타올 등등이 가득 담긴 목욕 가방? 네, 맞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자주 들고 다니던, 어쩌면 바구니 형태로 생겨서 펌핑 꼭지들이 삐죽삐죽 올라와 있을 바로 그 목욕 가방 말입니다. 엉뚱해 보이지만, 그래도 경비 아저씨 고 최희석 씨가 어떤 사람이었나를 보여주는데 이만한 소재도 없을 듯합니다. 또 이번 사건의 ‘기원’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건 재구성에 중요한 대목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고인의 증언을 직접 듣지 못해 기사에 많이 녹이지 못한 사연 하나가 바로 목욕 가방 이야기입니다.

 

  보도로 알려졌듯, ‘주민 갑질’의 직접적인 계기는 주차 문제였습니다. 이중주차된 가해자 입주민의 차를 이동시켰다는 이유로 경비 아저씨를 향한 폭행과 폭언이 시작됐죠. 그런데 사실 주차 문제와 관련한 가해자의 ‘노매너’는 하루 이틀 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최 씨 경비일지를 보면, 이미 지난해 12월 큰 마찰이 있었습니다.

 

“2019.12.5. 차 문제, 사이드브레이크 잠김. 3, 5일에도 민원. 일요일도 민원 7~8차례.”

“2019.12.7. 주차 문제로 민원, (주민들이) 견인조치 하라고 함. 회장님 면담 신청한다 함.”

 

  애초부터 가해자의 차량은 마을 주민들에게 골칫덩이였던 겁니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가해자 본인이 말썽을 부려놓고, 경비 아저씨에 화풀이를 한 건가? 첫 폭행이 있었던 4월 21일의 CCTV, 경비 아저씨는 이중주차된 차를 밉니다. 차는 부드럽게 밀려 나갑니다. 사이드브레이크, 분명히 풀려 있었습니다. 여차하면 밀라고 그리 해놨을 텐데, 그런 차를 좀 밀었다고 사람을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할 만큼 괴롭혔단 말인가? 유가족과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비 아저씨가 가해자에게 싫은 소리를 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주차 좀 제대로 해요!” 삿대질할 성격은 더더욱 아니었죠. 그런데 착한 경비 아저씨에 대체 왜?

  과거로, 과거로, 경비일지를 더 살펴보다 눈에 띄는 대목이 하나 보였습니다.

 

"2019.2.24. 0000호 아들(=가해자) 문제로 어머님 신고, 경찰 출동, 철저히 살피기 할 것."

 

  고개를 갸우뚱하며 고인의 형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혹시 생전 동생에게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 싶어서였습니다. 마침 형님도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내막은 이랬습니다. 아들, 즉 가해자 입주민은 난폭했습니다. 화가 나면 어머니를 때릴 정도로. 실제 그는 존속폭행 전과가 있습니다. 마음씨 여린 경비 아저씨, 어머니를 돕기로 합니다. 경비 일지에 “철저히 살피기 할 것”이라고 맹세했듯.

 

  일단, 경비 아저씨는 어머니의 부탁 하나를 들어줍니다. ‘목욕 가방’을 경비실에 숨겨달라는, 또 아들이 보이면 전화 좀 달라는 부탁입니다. 실제, 경비 아저씨는 주차장에 들어서는 아들을 보고 전화를 겁니다. “아들 왔어요.”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부리나케 집을 나가 복도 어딘가에 숨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몰래 지켜봅니다. 현관문이 닫히면 그때서야 1층 경비실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숨겨놨던 목욕 가방을 들고 찜질방으로 갑니다. 거기서 밤을 샙니다. 이튿날 아들이 나갑니다. 경비 아저씨가 또 전화합니다. “아들 나가요.” 어머니는 찜질방을 나옵니다. 집으로 향합니다. 목욕 가방을 다시 경비실에 놓고 올라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운이 덮칩니다. 아들이 어머니와 통화하는 경비 아저씨를 목격한 겁니다. “아저씨 지금 누구랑 통화하시는 거예요?” 아들은 눈치챕니다. 어머니가 누구 도움으로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었는지. 어떻게 ‘도피’ 생활을 이어갔는지. 그리고 그때부터 경비 아저씨에게도 난폭해집니다. 막말합니다. 막대합니다. 그리고 주차 문제로 본격 시비를 겁니다.

 

  단순히 ‘착한 사람 vs 못된 사람’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사연은 다르지만, 대한민국 경비원 갑질의 본질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회 약자에 대한 화풀이, 업신여김, 무시, ‘나는 갑’이라는 근거 없는 오만, 나아가 내가 낸 관리비로 월급을 타가는 ‘머슴’이라는 큰 착각.

 

  하지만 경비 아저씨는, 비록 입주민대표자회의에서 고용한 우리 사회 ‘임계장’ 대표적인 ‘을’들이지만 누군가의 아빠입니다.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고인도 그랬습니다. 결혼한 큰딸, 대학생 둘째딸, 이렇게 두 딸의 아빠였고 손주들의 할아버지였습니다. 특히나 고인은 아들에 매 맞는 이웃 어머니를 적극 도운 마음씨 착한 우리 이웃이기도 했습니다.

 

  경비 아저씨 고 최희석 씨의 음성 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나 빌어도 봤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나 진짜 작은딸, 큰딸 아기들(=손주들) 챙기려면 돈 벌어야 됩니다."

▲ 아파트의 경비원 최모씨가 숨지기 전에 남긴 메모와 유서

대한민국 모든 경비원 갑질도 ‘그도 누군가의 아빠’란 생각을 먼저 한다면 상당 부분 뿌리 뽑히지 않을까 합니다.

▲ 아파트 경비실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P.S. 제 능력과 어울리지 않게 경비 아저씨 기사로 이런저런 상을 받았습니다. 감사 인사를 남기고 싶습니다.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경비 아저씨 기사는 써야 한다”며 열외를 허용해준 사회부 이종구 부장, 날림 기사를 차분하고 날카로운 기사로 다듬어준 박소정 데스크, 그리고 늘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며 제 눈을 환하게 만들어주는 김지선 캡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입에 단내나도록 뛰어다니면서도 불평은 되도록 삼키며 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사건팀 후배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