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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스토리] 사과 한마디 했더라면…
2021-01-13

안윤학 사회부 기자 / 2020 최다 기자상 수상

  지난해는 코로나19로 모든 국민이 참 힘들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어려웠기에 입에 올리기 민망하지만, 2020년이 개인적으로는 참 영광스러운 한 해였습니다. 한국기자협회에서 주는 ‘이달의 기자상’만 세 차례, 방송기자연합회 ‘이달의 방송기자상’ 세 차례에 한국방송기자클럽 올해의 대상까지. 외부 기자상만 8개를 탔습니다. 창사 이래 전례 없는 수상실적이라며, 회사에서는 올해 YTN 대상의 영예까지 안겨줬습니다. 단연 최고의 한 해였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특종 보도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주민 갑질에 경비원 극단적 선택' 연속보도를 떠올립니다. 취재하면서 가장 아팠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가해자 엄벌과 제도개선으로 귀결되면서 보람도 컸습니다. 가해자 입주민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국민이 느낀 공분에 비교해서는 적은 형량이었습니다. “사실상 살인, 징역 10년 이상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오늘은 관련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재판부 “권고형량 넘어 판결”…법조계 “국민감정 고려”

 

  대법원 권고형량이라는 게 있습니다. 쉽게 말해, A라는 혐의에는 B 정도 형벌이 적당하다며 일반 판사들에게 권하는 형량입니다. 가해자 입주민은 보복 감금과 상해, 보복 폭행 등 7가지 혐의를 받습니다. 혐의 목록에 ‘살인’은 없습니다. “사실상 당신이 그를 죽인 거야”라고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그러나, 직접 살인은 아닙니다. 상해치사도 안 됩니다. 이 때문에 기존 판례를 연구한 재판부의 결론은 징역 1년~3년 8개월이었습니다. 권고형량 최대치에, 재판부는 1년 4개월을 더 얹어 5년을 선고했습니다. 죄질이 좋지 않고, 반성도 하지 않고, 유족의 용서도 받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뭔가 아쉬웠습니다. 진보 성향의 인권 변호사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격분할 줄 알았습니다. “징역 5년, 말이 돼?”라며. 제 마음에 공감해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랐습니다. 그의 반응은 차분했습니다. “냉정하게 혐의만 따져본다면 징역 5년, 세게 나온 거다. 재판부가 나름 신경 쓴 것 같다. 권고형량과 국민 여론 사이에서 많이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변호사들 의견도 비슷했습니다. 혐의보다 ‘중형’이 내려졌다는데 이견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가해자는 초범, 여차하면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도 있었습니다. 단, 여기엔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바로 ‘진정성 있는 사과’입니다.

 

“공판 때 유족 조롱”…“분위기 심상치 않자 합의금 언급”

 

  경비원 친형께서 늘 하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가해자가 1%라도 반성하는 기미가 있었다면,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라도 써주려 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조금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죄책감 대신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선고가 다가올수록 자신이 불리함을 느끼고, 유족을 향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입에 담은 건 사죄가 아닌 ‘합의금’ 얘기. 진정한 사과 한마디 없이 “얼마면 되겠냐?”, 이에 유족들은 더 화가 났습니다. “그게 반성하는 태도입니까?”


  결심 공판에서 보인 가해자 태도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경비원 친형이 가림막 설치를 요청합니다. 이에 가해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왜 가림막을 설치했는지 묻고 싶다. 뭔가 찔리는 게 있는 거냐? 나는 진짜 폭행한 적 없는데.” 유족을 향한 조롱이였습니다. 유족을 두 번 울리는 일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재판 중간에 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재판부도 혀를 찼던 것 같습니다.

아직 용서받지 못했는데 가해자 보석 신청…유족들 “두려워 이사 준비”

 

  진정한 반성이란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가해자가 사건 초반부터, 최소한의 인간 된 도리로서 “미안하다, 잘못했다. 내가 때린 것 맞다. 마땅한 벌을 받겠다”라며 머리를 숙였다면 어땠을까요?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최소한 유족들이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는 써줬을 겁니다. 물론, 형량을 적게 받기 위해 미안한 척 연기하는 건 비열한 짓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유족들의 마음을 달랠 수만 있다면, 그 또한 최악은 아닐 것입니다. 가해자는 그러나, 최악의 길을 갔습니다.


  여전히 또 최악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불구속 상태서 재판받게 해달라며 보석 신청을 냈습니다. 여전히 반성할 뜻이 없어 보입니다. 유족들은 사과받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그의 보석 신청 소식에, 행여 보복을 당할까 두려움마저 듭니다. 이사 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달아나야 하는 부조리한 현실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까요? 


  다만, 징역 9년을 구형했던 검찰도 항소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형량이 더 높게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심 재판부는 과연 어떤 결론을 내릴까요? 그때까지 가해자가 반성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어떤 판결이 내려지든, 유족에게 용서받지 못한 자를 국가가 용서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